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나영일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무형유산 제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05 - 130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통 활쏘기는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형유산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무과시험에서 다양한 활쏘기가 행해지면서 전통 활쏘기는 우리나라의 장기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894년 무과제도가폐지되면서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서 전통 활쏘기의 수단적 가치와 효용성이 없어지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1899년 프러시아 왕자인 하인리히(Prinz Heinrich, 1862~1929)가 대한제국을 방문하면서 전통 활쏘기의 부활이 가능하였다고 선행연구들을 언급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이 글의 목적은 프러시아의 하인리히 왕자가 전통 활쏘기의 부활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문 기사와 하인리히 왕자의 방한에 관한 대한제국과 독일 정부 간의외교 문서, 그리고 하인리히 왕자가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 ~ 1941)에게 보낸 편지 등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였다. 한국의 자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하인리히 왕자의 활터 방문에 대한 기록은 통역관 라인스도르프(L.W.F. Reinsdorf)의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인리히 왕자가 방문하여 활쏘기를 본 곳은 서궐(西闕)이 아니라 당시에 북궐(北闕)이라 불리던 현재의 청와대 자리인 중일각(中日閣)임을 알 수 있었다. 또 하인리히 왕자의 방문 시에 영접하였던 민영환(閔泳煥)과 이재순(李載純)을 주축으로 황학정 사계와 청룡정사계가 부활되고, 고종이 내하전(來賀錢)을 후원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전통 활터와 활터 조직이 활성화될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