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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성주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강원사학회 江原史學 江原史學 제3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37 - 17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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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貂皮는 주로 明의 使臣에 대한 예물 또는 선물로 활용되었다. 명의사신들이 머무는 使臣館에서 金銀과 초피 무역을 금지한 것도 국가적 차원의 초피증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점차 조선에 온 명의 사신들은 조선과의 초피 무역을주도하였다. 세종 때 명의 사신들은 毛皮 무역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는데, 당시모피 무역의 중심 물품은 초피였다. 이후 명의 사신들은 사신관에서의 사적인 무역까지 요구하였다. 마침내 성종 때는 사신관에서 초피를 비롯한 각종 물품들의 무역이 허가되었다. 한편 원래 명에 보내는 조선의 朝貢品에는 초피가 없었다. 그렇지만 세종 때 태종의양위와 세종의 즉위라는 시점에서 초피 등을 보냈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초피를명에 예물로 보낸 것이다. 이후 성종 때 명 황제가 조선에 별도의 進獻品을 요구하였는데, 이 別進獻(別貢)에 초피가 포함되었다. 명 황제가 조선에 별진헌을 요구한것은 宣德帝의 후궁이었던 恭愼夫人 韓氏와 조선 출신 환관 鄭同 때문이었다. 명 사신들이 조선에 초피를 요구하거나, 무역에 나선 것은 당시 명에서 초피가점차 유행하기 시작한 것에 원인이 있었다. 명 황제가 초피를 별진헌에 포함시킨것도 명에서의 초피 유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명 황제는 자신의 생일에 맞춰 별진헌의 정례화를 요구하였는데, 조선은초피 등이 조선의 산물이 아니고 女眞의 땅에서 구하는 것이라며 별진헌 물품의감면을 요청하였다. 마침내 공신부인 한씨의 죽음과 정동의 죽음을 계기로 초피등의 물품을 줄여서 보낸 후, 감면을 요청하여 별진헌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게되었다. 그 후 명 사신들에 대한 초피 증여나 무역은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조선에서도초피 등의 모피물이 희귀하게 되어 명 사신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사실 모피물이 희귀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조선에서도 초피의 유행으로 그 수요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었다. 초피의 유행은 초피의 수요 증가와 가격상승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上等의 초피는 여진과의 무역을 통해 마련하고 있었다. 이에 명에 대한 별진헌 정지 이후 명과의 초피 무역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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