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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근우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22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85 - 32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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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과 석보상절은 모두 1450년 경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종교 관련 문헌으로 여러 가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석보상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석보상절의 편찬과정, 간행 시기나 간행 장소 등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특히 간행시기와 관련하여 편찬이 완료된 직후인 1447년 혹은 1448년 경까지는 간행이 완료된 것으로 인식해 왔으나, 1450년까지도 금내(禁內)에 설치된 정음청(正音廳)을 중심으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인쇄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간행하는 역할을 맡은 정음청은 세종이 설치하였으며, 그 산하에 책방(冊房), 조각방(雕刻房), 화빈방(火鑌房), 묵방(墨房)이라는 하부 조직이 있었다. 또한 인판장인(印板匠人)과 장책서원(粧冊書員) 등 책을 인쇄하고 제본하는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직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건물의 규모도 컸던 정음청은 불경을 인쇄한다는 사실과 환관 등이 간여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단종 즉위년에 폐지되었다. 석보상절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3종류의 새로운 활자가 필요하였는데, 이는 정음청과 그 부속기관에서 주조하였고, 책방은 활자와 먹을 이용해서 석보상절을 인쇄하였다. 석보상절 간행과 관련된 일련의 작업을 주도한 것은 수양대군이다. 석보상절을 간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우리말과 한자 음가를 나타내기 위한 활자들은 방점과 일부 모음에서 둥근 점을 사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 활자는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사리영응기에서만 사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활자들은 만들어진 장소와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정음청자(正音廳字)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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