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새미오 (태동고전연구소)
저널정보
영주어문학회 영주어문 영주어문 제41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71 - 195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艮翁 李瀷(1579~1624)의 제주유배문학의 성격과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 았다. 간옹은 광해군시기 인목대비 유폐건에 반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옥에 갇혔다. 간옹은 옥중에서 만난 동료들과 옥중거처를 ‘可矣窩’라 명명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 지 않고, 광해군에게 저항하였다. 그리고 옥 생활의 마지막에 제주유배형을 받았다. 한양에서 처음 제주유배형을 받았을 때, 간옹은 참으로 의연하였다. 하지만 제주 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하자, 의연한 마음은 점점 불안감으로 휩싸여갔다. 그렇지만 간 옹은 이 불안감에 무너지지 않았다. 간옹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었고, 이를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궁구하며, 조금씩 본연의 모습을 찾아갔다. 간옹은 제주유배 시기에는 송상인⋅정온 역시 같은 지역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 었다. 간옹은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울적한 유배생활을 버텼다. 이들은 인조반정으로 제주유배형에서 풀렸고, 다시 관직생활을 하였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본토에서 벼슬살이하는 제주문인들에게도 간접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이는 제주지성사에 있어서도 주목해야할 사항으로 판단된다. 유배심리에 따른 간옹의 유배 는 유사한 패턴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면에 유배인들간의 밀접한 관계와 정치변화는 이전의 제주유배문학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특징이었다. 간옹유배의 의의는 후대에 끼친 영향관계에서 두드러진다. 간옹은 제주에서 교학 활동을 펼쳤고, 김진용⋅고홍진과 같은 인물을 키워내었다. 이들이 남긴 문집은 없지 만, 제주설화와 제주신화등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인물이며, 제주지성사에 있어 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간옹은 제주에서 헌마공신 김만일의 딸과 혼인하여, 仁濟라는 아들도 낳았다. 그 후손들은 이후 제주에 정착하였고, 문과⋅무 과에 급제하여 제주향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일원으로 성장하였다. 이런 점 역시 다른 제주유배인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