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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현수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대우교수)
저널정보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 제7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95 - 33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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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28일 『동아일보』에는 ‘문인회’에 대한 사설과 ‘필화사건’을 다룬 기사가 동시에 실려 있다. 1922년 말, 1923년 초에 걸쳐 일어난 일은 둘에 한정되지 않는다. 11월 10일 『신천지』 6호가 발매금지를 당한 후 백대진이 구금 처분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 『신생활』 11호, 12호는 연이어 발매금지를 당하고 모두 6명의 관계자가 구금된다. 미디어 관계자에 대한 사법 처분은 처음 있는 일로, 두 잡지는 필화사건에 의해 결국 폐간에 이르게 되었다. 1922년 12월, 1923년 1월 동아일보, 개벽은 처음으로 문인들의 회합을 마련한다. 또 『동아일보』, 『개벽』, 『동명』 등은 1923년 신년호를 ‘문예 특집’이나 거기에 가깝게 꾸몄다. 이들 미디어는 신년호에 실린 글에 대해 원고료 역시지급한다. 1922년 12월 24일, 1923년 1월 5일 ‘문인회’는 모임을 가지고, 명칭, 기관지발행, 회원 추천 등에 대해 논의했다. 4월 1일 ‘문인회’ 기관지 『뢰내쌍쓰』가 발행되었는데, 성의, 비용 등의 이유로 문제를 지닌 채였다. 1923년 12월 31일 『廢墟以後』를 발행했지만 역시 기관지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1922년 후반기나 1923년 전반기는 동인지 문학 시대가 막을 내린 시기이며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 미디어에도 문인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필화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러한 즈음인데, 언론계에 미친 충격은 『신천지』의 그것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당시 미디어들은 검열에서 문예를 시사, 정치, 사회와는 다른 영역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문인 회합, ‘문예특집’, 원고료 지급 등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상황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문인들이 유희적 태도에서 벗어나 생활에 대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문인회’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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