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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시은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11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3 - 15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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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오녀산성이 국내도읍기까지만 활용되었을 것이라는 중국의 『五女山城』(2004) 보고서의 주장과는달리 평양 천도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음을 규명하고, 폐기 시점까지도 성 내부에 기와 건물지가 조성되지않은 점에 주목하여 국내로의 천도 이후에는 방어용 산성으로 기능하였음을 검토하였다. 본문에서는 남한 지역 고구려 토기와의 비교를 통해 평양 천도 이후에 해당하는 고구려 토기가 오녀산성에 상당수 존재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는 오녀산성이 고구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계속 이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자료이다. 그렇지만 토기의 제작기법이나 세부 형태에서 아차산 보루군 출토품과는 일부 차이가 확인되고 있어, 오녀산성의 제4기 문화층 출토 토기는 고구려 중기와 후기에 걸치는 5~6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동시기 적석총의 석재 가공과 건축 기술 그리고 고구려 석성에 대한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산성의 석축성벽 역시 고구려 전기가 아닌 중기에 축조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쐐기꼴 성돌로쌓은 성벽이 고구려 중후기의 다른 성에 비해 정연하지 않은 점이나 서문지의 구조가 초기 옹성 구조인 것을보면 오녀산성의 성벽 축조 시기는 고구려 중기에서도 약간 이를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중기 이후에 왕궁이나 관청 등의 중요 건물에는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오녀산성에서는 기와 건물지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국내 도성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자리한 오녀산성은 국내도읍기부터는졸본 지역의 방어를 주목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오녀산성은 평양 천도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었으나평양 도성으로 향하는 주 교통로에서 벗어나면서 점차 그 활용도가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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