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수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저널정보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동국사학 제7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43 - 84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에서는 10∼12세기 탐라의 대외교류 양상을 분석하여 당시 탐라의 해양성과 해양활동의 실체를 모색하였다. 그간 고려전기 탐라와 고려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정치적 복속 여부, 복속 시기, 성격, 지배형태 등 수장체들간의 교섭관계를 다룬 논의였다. 하지만 ‘탐라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또한 생업과 삶의 확장을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 전근대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고 한정된 제주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였다. 당시 바다를 매개로 한 동아시아 교역 시스템 안에서 탐라는 나름의 모색을 통해 송-일본-고려 등 주변 국가와 교류를 하였으며 이들로부터 받아들인 선진문물은 탐라사회에 자극을 주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고려는 건국 후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으며 이는 팔관회의 외국인 조하의식에서 구체화되었다. 宋, 거란, 여진, 탐라, 일본, 대식국 등과 함께 팔관회의 진헌의례와 하사를 통해 조공무역으로 고려의 다원적 천하관을 구현하였다. 탐라는 이를 활용해 고려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고려를 찾은 타 국가와의 무역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탐라는 고려의 번국으로 조공-책봉 질서 안에서 기미지배권에 놓여 있었지만 독립국으로 존재하면서며 해양을 통한 교류활동을 지속하였다. 그 와중에 기상악화와 선박 파손 등으로 표류하여 송이나 일본에 표착하였는데 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교류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탐라는 12세기 중반 고려의 지방으로 편제되면서 독립국으로의 지위를 잃음과 동시에 해상활동 범위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고려정부의 과도한 공부와 수탈은 탐라인들의 반발을 불러와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