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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판수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중국지식네트워크 중국지식네트워크 제17권 제17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45 - 28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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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이하 중공) 관련 연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게 축적되어온 반면, 정작 그 치당(治黨)과 국가 통치의 구심점인 ‘중공 당치(黨治)’가 언제 확립되었고, 어떻게 당국체제로 이행되었는지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중공 창당 100년에 이른 지금까지도 중공 당치 형성의 ‘과정’ 자체가 핵심 쟁점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일부 연구자들이 1920-1930년대의 “군당관계” 문제를 제기한 적은 있었지만, 이는 일시적, 일탈적, 단편적 문제로만 인식되었고, 심지어 그 문제들이 해소되었다라고 판단한 것은 ‘역사적 분석’이 아닌 ‘믿음’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중공 당치 형성은 사실 중공중앙의 오랜 숙원이었다. 중공 ‘볼쉐비키화 세력’이 주도한 당치가 일시적으로 확립된 것은 대략 1933년부터 1934년 시기에 국한된다. 그 시기 동안에도 마오쩌둥 개인의 영향력은 약화되었지만 ‘그 파벌의 군사적 영향력’은 지속되었고, 이 때문에 1935년 1월 쭌이회의에서 코민테른이 파견한 군사고문 오토브라운의 군권 박탈이 가능했다. 이런 측면에서 중공 ‘이당치군’ 확립은 볼쉐비키화를 주도한 중공중앙이 아닌 반볼쉐비키화로 내몰린 마오쩌둥 파벌이 ‘군권’에 기반하여 ‘당권’을 획득한 결과물로 접근할 수 있다. 즉 마오쩌둥과 그 파벌의 ‘군사적 쿠데타’가 현재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 중공중앙의 ‘기원’이 되었다. 다만 마오쩌둥이 지방 군권을 중심으로 로미나제·리리싼, 미프·왕밍, 리더·보구 연합과의 오랜 억압을 이겨내고 중앙 당권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공 ‘이당치군의 초석’은 사실 리리싼과 왕밍이 마오쩌둥 파벌을 억누르기 위해 뿌린 피의 유산에서 생성되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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