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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용태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8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09 - 33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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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희는 신미양요 당시 수원유수를 맡아 서해안 방어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고위관료였으며, 박규수 신석우 조면호 등과 함께 19세기 중반 서울 북촌시단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역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관련 자료가 흩어져 버린 탓에 본격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 자료센터에서 일본에 소장된 신석희 문집을 촬영하여 일반에 제공하게 됨으로써 본격적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본고는 학계에 제출되는 신석희에 대한 첫 번째의 본격적인 연구라 할 수 있는바 관료로서 그의 활동 양상과 사상적 지향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연구의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 신석희는 1842년 35세에 관계에 나아가 1873년 66세에 이조판서 재임 중 삶을 마쳤는데, 1861년부터 지속적으로 외교문서 작성에 깊이 관여하였다. 이는 그의 문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며, 이런 활동을 통해 그는 해외 정세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쌓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일찍부터 海防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兵書에 대해서도 깊은 탐구를 하였다. 그는 침투해 오는 서양 세력에 대해 외교적 수단보다는 군사력으로 몰아내는 방법을 선호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1871년 수원유수로 있을 때 신미양요가 발발하자 그는 수원과 서해안의 방비에 나름 심혈을 기울였으며 火攻을 이용해 적선을 물리칠 구체적 작전계획을 입안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석희의 대외인식은 ‘주전론’으로 명명할 수 있겠지만, 관념적 위정척사론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하여 폭넓게 논의하며 그 의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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