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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준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2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79 - 10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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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고의 父親인 평로절도사 李納은 河北三鎭과 함께 4왕의 난을 일으켜 덕종을 굴복시킨 후(貞元 연간) 조정과의 직접 대결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는 德宗이 회유를 위해 내린 은택을 모두 누리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叛逆의 태도를 거두지 않았다. 이러한 양면성은 이납과 주변 번진의 관계에서도 드러났다. 『구당서』 권144, 양혜원전의 표현을 조금 바꾸면 그들은 “急之則合謀, 緩之則嫌?自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납을 계승한 평로절도사 이사고 역시 겉으로 조정의 명을 받들면서도 속으로는 항상 주변에 대한 침탈의 마음을 품었다. 이는 이사고가 이납의 방침을 그대로 계승한 것을 말한다. 한편, 덕종은 이사고의 양면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납에게 한 것처럼 지속적으로 은택을 내려 그 지위를 높여주었다. 이납과 덕종 간에 보이는 관계가 이사고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사고의 태도는 주변 번진에서도 보였다. 즉 이사고가 평로절도사가 된 초기에 성덕절度사 王武俊이 평로를 침탈하려고 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사고 시기에도 강번들이 양면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사고 시기에도 덕종은 번진 간에 분쟁이 생기면 적극 개입하여 狀況을 수습하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번진들의 안정이 唐朝의 안녕에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추진하는 일반 번진에 대한 개혁정책에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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