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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가람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61輯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97 - 130 (34page)
DOI
10.37981/hjhrisu.2021.08.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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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국가를 지향하며 개국한 조선은 『朱子家禮』를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 속 제례의 지속적인 실천을 효행으로 설명하며 이의 확산을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5세기 조선은 가묘 및 신주를 통한 죽은 부모에 대한 지속적인 유교식 의례도 효행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등 효행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마치 죽은 부모가 살아 있는 것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속적인 효행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 지속적인 효행의 실천은 조선이 지향하던 유교식 효행의 하나였다.
왕실 또한 文昭殿을 설립하며 왕의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적인 효행을 실천한다. 그러한 가운데 문소전에 봉안한 장순왕후의 신주를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조정은 이를 부모의 죽음으로 설명하며 흉례를 거행한다. 즉 가묘와 신주는 의례를 위한 도구가 아닌 죽은 부모를 대신하는 신성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6세기 초에는 士林을 중심으로 효행의 엄격한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15세기까지 국가는 상장례와 제례의 확산을 위하여 일상생활 내 의례 확산 및 실천에 집중하였는데, 16세기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례 실천의 진정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禮와 孝가 동일한 것만은 아니라며, 문소전의 의례를 非禮로 규정하고 폐지를 요구한다. 이때 사림들은 문소전의 의례가 종묘의 역할과 겹치고, 의례가 너무 번독하여 정성이 깃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己卯士禍 이후 中宗 대에 문소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더 이상 없었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문소전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였다. 즉 先祖를 위한 의례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예가 아닐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5세기 유교식 효행의 강조와 문소전 설립
3. 유교식 효행의 정착과 장순왕후 신주 도난 사건
4. 문소전에 대한 비판과 유교식 효행에 대한 인식 변화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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