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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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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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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98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67 - 81 (1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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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분명히 성리학으로 무장된 시대였다. 이는 지배층만이 아닌 피지배층에게까지도 유형·무형의 교육을 통해 성리학을 국민생활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조선이 아무런 교육도 없이 저절로 성리학 국가가 되었다는 게 아니다. 유형의 형식화 된 성균관 교육 역시 모든 교육기관의 그 정점에 있었지만 그 밖의 비형식적인 교육들이 오히려 더 국가의 성리학 이념 틀을 크게 형성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전통시대는 사실상 비형식인 교육들이 더 큰 교육의 부분을 차지하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전통시대는 정치와 교육이 확실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즉 정교일치의 시대였다. 그러므로 교화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였고 성리학은 통치이데올로기로서, 또 형식적 교육과 비형식적 교육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도 작동하였다. 그래서 왕도정치 즉 덕치주의의 깃발 아래 지배층의 솔선수범은 더욱 중요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충효사상이 치도의 요체로 작동할 때 항상 효라고 하는 기본가치가 앞서게 되었다. 가족윤리의 기초이기도 하였지만 사회와 국가윤리의 기초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정치에서 효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덕목이고 실천윤리였기 때문에 조선시대는 효치시대였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어떤 식으로 효치가 이루어졌는지를 주로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기록들을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보다 더 효의 실행 논란을 가진 기록은 드물고, 또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문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효에 관한 기록들 중에서 국왕과 직접 관련된 기록들, 즉 국왕의 명이나 신하들에 의한 국왕에 대한 요구 또는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내리는 명들이 주요 분석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본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즉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으뜸 가치인 효를 정치의 요체로 삼은 효치의 시대였다. 그래서 정치는 곧 효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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