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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슬기 (덕성여자대학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44호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169 - 204 (36page)
DOI
10.18706/jgds.2021.4.4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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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군은 한과 흉노의 각축이 한창일 무렵, 양자 사이에서 전략적 위치를 점했던 조선 지역에 설치된 한의 군현이다. 창해군은 위만조선 멸망 뒤에 설치된 한군현보다 20여 년 앞서 설치되었지만, 2년이 채 안되어 폐지되었다. 창해군은 한군현을 다루는 연구들에서 부수적으로 언급되거나 진번군 혹은 현도군의 전신으로 이해되어 왔다. 대체로 ‘창해’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위치를 고려하거나, ‘예군남려’의 종족기반에 중심을 두어 창해군을 ‘동해안 지역’에 비정하는 연구가 주류를 점해왔다.
예군남려의 종족기반에 주목한 연구들은 대체로 예군남려를 부여나 고구려, 옥저, 예(동예)와 연결시켜왔다. 그러나 이는 기원후 3세기경 『삼국지』,『후한서』에 근거하여 내린 결론이므로 예군남려가 생존했던 당시의 역사상과 거리가 멀다는 맹점이 있다. 또한 지명에 근거한 견해 역시 ‘창해’가 동해만 전유하는 명칭이 아닌 점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원사료의 문맥을 고려하여 사건이 발발한 전한 무제기, 즉 위만조선 존속시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창해군의 위치를 파악해야한다.
이 글은 위만조선 멸망 전에 한이 그 영역을 관통하여 동해안 지역에 창해군을 설치했을 것이라는 기존 견해에 의문을 던진 것으로, 요동내속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창해는 발해를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창해군에 관한 역대 인식과 쟁점
Ⅲ. 창해군 위치비정을 위한 전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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