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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기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충청문화연구 충청문화연구 제24집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93 - 13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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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은 1895년 일어난 홍주의병 이후 해방 때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홍성인들은 1895년 항일의병을 봉기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음에도 1906년 의병을 재기하였다. 홍성의 관리나 개화계열의 유학자들은 실력을 양성하여 일제를 구축하자는 애국계몽운동을 펼쳐나갔다. 이들은 기호흥학회의 지회를 설립하여 근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일제한테 빌린 국채를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홍성에서의 만세운동은 3월 7일 홍성읍내에서 김종진 등에 의해 일어난 이후 4월초에 걸쳐 광천, 은하, 금마, 구항, 장곡, 홍동, 갈산 등 각 면에서 일어났다. 특히 4월 4일 있었던 6개 면의 횃불만세운동은 일제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각지에 만세운동을 파급하게 하였다. 김복한은 의병의 동지들과 연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 글을 보내 독립을 요구하는 장서운동을 전개하였다.
홍성의 청년들은 엡윗청년회와 광천청년회, 홍성청년회 등을 조직하여 지역인의 민지개발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홍성지역 학생운동은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으로 식민지 교육에 대한 반대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27년 3월 설립된 홍성노동조합에서는 노동문제 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제까지 다루어 메이데이 기념행사나 원총파업을 후원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홍성지역 농민들 역시 1930년대 초반부터 일제의 농업 수탈과 악덕 지주의 무리한 소작권 이동을 반대하여 소작쟁의를 일으켜 저항하였다. 신간회 홍성지회는 결성 이후 홍성지역 사회운동 단체간 연대를 통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해 갔다. 홍성의 유림들은 1927년 유교부식회를 설립하여 유교의 보급과 이를 통한 민족정신의 고취에 힘썼다.
홍성인으로 국외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인물로 김좌진이 있다. 김좌진의 활동은 그의 동생인 김동진과 김종진, 친족인 김우진, 그리고 결성 출신의 남중희 등을 독립운동의 전선에 나서게 하였다.
홍주의병에서부터 시작된 홍성인들의 항일독립투쟁은 일제강점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척왜론과 대일결전론에 바탕한 홍주의병의 무장투쟁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저지하였으며, 만주에서의 청산리대첩과 의열투쟁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홍성인들은 일제 식민통치의 불법성과 강압성, 그리고 한국인의 자주독립정신을 전 세계에 알렸다.

목차

한글요약문
1. 머리말
2. 한말 국권회복운동
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4.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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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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