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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기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충청문화연구 충청문화연구 제20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43 - 89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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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의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전쟁부터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06년 홍주의병에 부여인의 참여는 적극적이었다.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부여인들은 국채보상을 위한 단연동맹회와 국채의연소를 설립하여 국채보상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대한협회의 지회를 설치하였다. 1910년대 부여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은 독립의군부와 대동단 등의 비밀단체 활동으로 나타났다. 1919년 3월 2일 천도교구를 통하여 독립선언서를 수령한 이후 3월 6일부터 임천면과 은산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 항쟁하였다. 1920년대 부여인의 독립운동은 천도교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청년들을 중심으로 농촌 야학, 농민조합 설립운동 등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청년단체는 강연회 실시, 야학 개설등의 방법으로 근대 지식을 보급하기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혁명적 농민조합도 결성하였다. 장암면 장정마을은 부여지역 항일운동의 발원지의 한 곳이었다. 대종교 지도자 강석기의 영향으로 민족 학교를 설립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부여인들의 국외에서의 독립운동 역시 활발하였다. 장암면 출신의 강석기는 1919년 북로군정서 창설에 참여하여 고문의 직책을 맡았다. 강철구는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 북로군정서 서일 총재의 비서로 활동하였다. 신흥무관학교 교관과 사관연성소 학도단장 등으로 활동이 컸던 朴寧熙도 부여 출신이다. 의열단에 참여한 조중구와 강영직, 그리고 천병림 천병만 형제 등도 있다.
이와 같이 부여 지역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전쟁에서부터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을 비롯하여 1920년대 이후 청년운동, 농민운동, 사회운동 등 모든 부문에서 전개되었다. 또한 해외로 망명한 부여인들은 만주 무장투쟁과 의열단 활동, 임시정부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천도교 또는 대종교와 같은 종교 조직의 범주 속에서 비밀리에 활동을 전개한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1930년대 이후에는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은 청년층들에 의해 비밀결사운동이 활발히 추진된 특성도 보인다.

목차

한글요약문
1. 머리말
2. 한말 국권회복운동
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s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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