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국사학회 영국 연구 영국 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93 - 241 (4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8세기까지 이상적으로만 여겨졌던 영국 해군의 인사 시스템은 19세기의 ‘평화’를 맞이하여 예상치 못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전까지 인사 시스템의 동력이 되었던 ‘계속된 전쟁과 전투’라는 환경이 19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변화는 곧 장교들의 해상 보직 감소와 진급 기회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군본부에서는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으나, 그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1870년 해군 장관으로 부임한 차일더스는 내각의 정치적 지원 속에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먼저 해군본부의 조직 개혁을 단행하여 권력을 장관에게 집중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진급 및 전역 제도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 개혁은 여러 해군 장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차일더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개혁을 시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개혁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캡틴 호> 침몰 사건’은 그의 개혁 기조에 균열을 가했다. 이 사건의 조사에서 드러난 것은 차일더스가 해군본부 위원회를 ‘중앙 집권화’하면서 장교들과의 ‘의사소통’을 차단했고, 그것이 캡틴 호 제작에서 제기된 문제를 간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개혁에 불만을 표했던 ‘측근들’에 의해 폭로되었고, 영국의 여론은 차일더스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 비난을 견딜 수 없었던 차일더스는 해군 장관직을 사임하였고, 그가 추진했던 해군개혁은 미완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