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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5집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243 - 278 (36page)
DOI
10.52271/PKHS.2020.06.1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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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 딘 다얄(Lala Deen Dayal 1844-1905)은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여 영국 총독 정부의 사진가로 일을 했고, 1884년 이후에는 토후국 하이드라바드(Hyderabad) 군주의 공식 사진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당시 시깐드라바드(Secundrabad)와 봄베이(Bombay)에 스튜디오를 차려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죽을 때까지 당시 유럽과 인도 양쪽에서 큰 칭송을 받은 성공한 상업 사진가였다. 딘 다얄의 사진은 당시 큰 영향력을 가진 서구 제국주의 사진가들이 인도를 보는 시선과 근대화 식민주의에 긍정적 시선을 가진 것은 동일하고 민족주의 시선을 가진 것은 달랐다. 그는 서구 사진가들이 가진 근대주의 미학을 갖춘 사진가였다. 그는 토후국이 식민 지배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근대화를 긍정적으로 알려야 했고 동시에 토후국 과거에 대한 자긍심을 더 선양해야 했다. 다얄은 영국의 근대화 차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영국 지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었고, 인도 특유의 관용성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 영국의 식민주의와 고중세 인도 문화의 자부심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위에서 다얄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양 세력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두 진영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사진을 생산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위치를 두고 혹자는 영국 식민주의에 부역한 사람이라 평하기도 하고, 혹자는 민족주의의 시각으로 민족자존을 예술적으로 재현한 사람으로 평가하곤 한다. 적어도 1905년 벵갈 지역에서 민족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 이전에는 인도에서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 각각의 정당한 공간이 있었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 공간 안에서 그가 근대화를 따랐다고 해서 그를 식민 지배의 부역자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근대화를 토대로 한 민족주의는 다얄이 활동하던 당시 최고의 지성이자 시대정신이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침략하여 영토 확장 전쟁을 수행할 무렵에도 영국에게 저항하지 않고 그들의 지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민족자존을 잃지 않으려 했던 민족주의자의 하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근대화와 식민 통치 찬양의 재현
Ⅲ. 토후국 과거 영광의 재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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