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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朴炳渉 (日本竹島=独島問題研究ネット)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7집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237 - 265 (29page)
DOI
10.18496/kjhr.2020.02.67.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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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대 이와미(石見)국 하마다(浜田)에 사는 하치에몬(八右衛門)이 다케시마(竹島, 울릉도)로 밀항한 사건, ‘덴포 다케시마 일건’(天保竹島一件)이 일어났다. 그는 하마다번의 내락을 얻어 다케시마에서 천연자원을 채취하고 밀매했으나, 1836년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와 관련해 쓰카모토 다카시(塚本孝)는 1950년대 한・일 정부간 독도영유권 논쟁 시 일본정부의 낡은 견해를 꺼내어 이 사건을 독도 문제에 이용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의 판결문에 하치에몬은 마쓰시마(松島, 독도)로 도해한다는 명목으로 다케시마로 도해했다고 기록되었으므로 마쓰시마로의 도항은 문제없었으며, 마쓰시마에 대해 일본 영토로서의 의식이 에도(江戶)시대를 통해 계속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케우치 사토시(池内敏)는 ‘덴포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이 1696년 ‘겐로쿠(元祿)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을 이어받았으므로 마쓰시마로의 도해도 금지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덴포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은 겐로쿠 기에 쇼군(將軍)이 다케시마(울릉도)를 조선에 건네주었다고 기록했으며 역사 사실을 오해하고 있다. 따라서 이케우치의 논증은 충분치 않으며, 막부(幕府)가 겐로쿠 도해금지령을 어떻게 계승했는지 검증이 필요하며, 또한 막부가 마쓰시마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에도마치부교쇼(江戸町奉行所)가 작성한 『天保撰要類集』등을 바탕으로 이케우치의 논증을 수정 혹은 보완한다.
막부는 다케시마・마쓰시마의 소속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이를 알 수 있는 겐로쿠 기 막부의 자료는 이미 화재로 소실되어버렸다. 막부는 쓰시마(対馬)번에 문의하고, 다케시마 근처에 있는 마쓰시마도 겐로쿠 기에 도해가 금지되었던 것이나, 조선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그려져 있는 것 등을 알았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막부의 최고 사법기관인 평정소 관계자는 다케시마・마쓰시마 양도를 조선 땅처럼 붉은 색으로 그린 지도를 작성했다. 이는 오사카마치부교쇼(大坂町奉行所)가 「다케시마 방각도(竹嶋方角圖)」에서 두 섬을 조선 땅으로 그린 판단을 따랐던 것이다. 이처럼 ‘덴포 다케시마 일건’은 막부가 다케시마・마쓰시마를 분명히 조선 땅으로 인식한 사건이다. 결국, 에도시대를 통해 막부는 다케시마・마쓰시마를 일본 땅으로 인식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1. はじめに
2. 八右衛門の竹島密航と浜田藩の対応
3. 幕府の誤った竹島認識と松島調査
4. 竹島渡海関係者の松島認識
5. おわりに
参考文献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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