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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4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82 - 119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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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5세기 후반 부르고뉴령 네덜란드에서 군사적 의무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펴본다. 1453년 하베레 전투에서부터 1492년 헨트의 항복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부르고뉴령 네덜란드는 장기간 정치적⋅군사적 격변을 겪으면서 군사 동원을 정당화하고 조직하는 방법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1470년대 대담공 샤를의 군제개혁은 근대 군사혁명론을 검토할 수 있는 사례를 제공한다. 부르고뉴 “칙령군”의 수립과 군비 확충은 지속적인 대규모 군사작전을 가능하게 했지만, 병력을 충원하고 재원을 제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음으로, 부르고뉴 공작들은 봉건적 의무의 부활과 전용을 통해서 근대적인 군사적 의무 체계를 보강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기사 소집령은 사실상 봉토에 대한 일종의 재산세로 운영되어 군비를 충당하는 방편이 되면서, 또 일부 하류 귀족층과 도시 상류층에게는 직접 중기병을 동원하여 몸소 출전함으로써 기사작위를 수여 받을 수 있는 특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1480년대 내전기 동안 민병 무장령이 발동하면서 근대적 자원병의 강점과 약점이 드러났다. 도시 민병대는 단시일 병력충원이 가능했고 프랑스군을 격퇴하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또한 근대적인 무장, 훈련과 보급 등을 위해서 도시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했다. 근대로의 이행기 부르고뉴령 네덜란드의 경험은 군사적 의무의 수행을 위해서 봉건적인 전례와 근대적인 혁신이 상호 중첩되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군사적 활동을 위한 인력과 재원의 부담을 누가 어떻게 지고 또 보상받을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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