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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전문학회 고전문학연구 고전문학연구 제5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17 - 162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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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의 서얼 출신 문인이었던 東郭 李礥(1654-1718)은 1711년 通信使 製述官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당시 日本 문사들로부터 역대 사행 문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李礥은 朝鮮과 日本의 外交와 문화 교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와 정신이 ‘誠信’임을 강조하였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雨森芳洲가 󰡔交隣提醒󰡕(1728)에서 ‘誠信外交’를 주장한 것보다 앞선 시기에 제출된 것이며, 또한 우삼방주의 생각과 서로 상통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리고 이현은 조선과 일본을 상호 대등한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진전된 인식을 보여주었다. 內와 外, 古와 今의 상대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았으며, 중국 중심의 전통적 華夷觀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현이 일본의 文敎의 나라, 인재의 나라로 바라본 입장의 이면에는 인간 창조 활동에서 천부적 자질과 역량을 강조하였던 그의 인간관, 예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현은 작가의 자질, 능력의 측면과 관련지어 天機를 이해하였다. 일본의 많은 문인들, 그리고 女性 시인의 문학 활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또한 일본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이현은 일본을 직접 관찰하고 체험하는 가운데 일본을 부유하고 부강한 나라임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같은 富國으로서 이미지화한 일본 인식의 배경에는 ‘富’에 대한 그의 현실적, 실용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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