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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제한인문학회 국제한인문학연구 국제한인문학연구 제2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9 - 87 (4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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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귀(不歸). 이 엄중한 단어는 정율성과 정추를 동시에 표상하는 기호이다.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한 정추 역시 중국에서 활동한 정율성과 마찬가지로 북조선에 돌아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광주라는 하나의 고향에서 출발했고 그들의 종착역 역시 불귀라는 미혹의 장소였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 세월은 비록 짧았지만, 정신적 연대감은 알마티와 북경을 잇기 충분했다. 가혹한 시기에 타국에서의 파란만장한 삶과 예술가로서의 궤적은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음악사적으로나 생애사적으로 닮은 데가 많다. 두 음악가의 교유 및 음악적 연대를 구체화할 문서는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추 사후인 2013년 6월 알마티 자택에서 발견된 정율성의 서신 네 통을 토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30여 년간 지속되어 왔으며 본관이 같다는 점과 고향이 광주라는 것으로 인해 축소된 두 거장의 교유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정율성은 정추를 비롯해 모스크바에 유학 중인 후배 작곡자들의 동향을 알기 원했고, 모스크바의 음악적 수준이나 사조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당시 북경의 음악이 대중선전선동을 전제로 한 이른바 공공성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정율성은 모스크바의 정추를 자신의 음악이 세계적인 사조와 뒤떨어지지 않았는가를 점검하는 메신저로 여겼다. 이 두 음악가의 교유는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유의미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음악가로서 품위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서신을 통해 소련과 중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삶을 살아간 예술가들의 행적을 엿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사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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