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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범 (광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한국시학연구 제59호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259 - 28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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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임화의 초기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 까닭은 우선은 카프의 상징이라고 불렸던 시인인만큼 이 단체에 가입한 이후의 시가 주로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카프 가입 이전의 시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판단들이 원인이다. 그러나 한 시인이 이전에 견지했던 개성이 특정한 단체의 가입과 그로 인한 경험으로 부인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이 논문은 이러한 판단으로 임화의 초기시를 재검토했다. 임화가 1924년에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은 ‘연(戀)’의 대상에 대한 상실감과 그에 따른 자기혐오가 나타나지만, 그런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1926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명일(明日)의 예술’을 염두에 두고 있던 임화는 과학과 종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세계의 현실을 함축하는 ‘밤’이라는 시어를 전면화하여 개인적 상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상실감을 공유하는 이들도 “조선의 민중”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로써 이전의 자기혐오는 긍정적 태도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철학적 전망과 문학적 타개책에 대한 신념이 공고해진 데에는 카프 내에서의 경험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임화의 초기시에 내재했던 고민이 없었다면 그러한 변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계급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발굴작 「말세」와 더불어, 임화 초기시의 진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작품은 ‘밤’과 대립하는 ‘태양’에 대한 열망이 담긴 발굴작 「신조태양」이었다. 임화가 나중에 스스로를 ‘밤의 시인’이라고 명명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밤’을 몰아낼 ‘태양’을 심중에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에서 본질적인 대립구도를 형성한 것은 ‘밤’과 ‘태양’이지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념들이 아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복기(復棋)된 기억과 명일(明日)의 예술
Ⅲ. 초기시의 증후:‘연(戀)’의 대상과 ‘밤’이라는 상징
Ⅳ. 초기시의 진전:‘밤’의 전면화와 ‘원형태양’의 추구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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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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