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데올로기적 담론이 효력을 상실했을 뿐더러, 각종 첨단 기술 및 매체의 발달로 인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 조차 사라져버렸다. 연극이 한때 꿈꾸었던 완벽한 유토피아적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지만, 현대사회는 이러한 이상향을 자신이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기만적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주고 있다. 90년대 이후 일련의 연극적 실험들이 더더욱 전통적인 연극관행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90년대 이후에는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동구유럽이 시장경제 체제로 본격 선회하게 되면서, 이후 세계는 더 이상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재편되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정치, 경제적 패권을 잡은 미국식 자본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암울한 전망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더 절망스러운 것은 거대괴물처럼 인류의 정신적, 물질적 삶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문화가 얼마나 파괴적인 위험을 안겨주는가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제할 반대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은 60년대의 저 이데올로기와 배치되는 것 같다. 자발성, 즉 자신의 개성을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등의 모토들은 이제 시스템이 넘겨받았다. 즉 시스템이 만들어지려면 주체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억압하고 그 실현을 절대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저 오래된 논리는 이제 없어졌다. 절대 소외되지 않은 자발성, 개성의 표출, 자기 실현-시스템은 이 모든 것을 직접 자신의 것으로 이용하고 있다.
연극에 대한 통념적인 관행들에 맞서 최근 10-20년 내에 이루어진 실험들 역시, 다만 그 방법이 그들의 선배들이 앞서서 행했던 것과 다를 뿐 여전히 그들의 공간 속에 세계를 가져온다. 전통적인 연극은 엄밀한 의미에서 현실 자체가 담겨진 공간이 아니라, 그 현실을 넘어서 저 만치에 있는 유토피아를 향해 나 있는 일종의 창문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삶이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미디어 산업 및 자본이 주는 달콤한 유혹의 도움을 빌어 스스로를 더없이 완벽한 유토피아로 위장하고 있으므로, 이제 연극은 바로 그러한 기만적인 유토피아 자체를 공간 속에 담고자 한다. 그들은 연극이 더이상 무언가를 향해 나 있는 창문이 아니라, 현실이 은폐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 비이성 자체를 관객 스스로가 직시할 수 있는 거울이어야 함을 선언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연극적 실험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전략은 바로 현실에 대한 전통적인 연극적 전략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현실을 가져오려는 다시 쓰기이다. 즉 텍스트에서부터 배우, 그리고 공간과 시간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모든 통념적인 연극의 관행들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관객들 앞에 도드라지게 부각시키는 그들의 작업은,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현실에 대한 ‘반-연극적인’ 도발이다. 그것은 멀리는 20세기 초반의 역사적 아방가르드, 그리고 가깝게는 그들의 모더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았던 60년대의 네오 아방가르드의 작업으로부터도 한참 거리가 있다.
오늘날 연극이 추구하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없음’의 상태, 즉 유토피아적인 피안의 이상향이 아니라, 혼돈과 무질서한 관계의 그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에테로토피아 자체이다. 너무나 많아 혼란스럽건, 아니면 필요이상으로 제거되었건 간에, 오늘날 연극공간 속의 연극적 기표들은 서로 아무런 내적 연관성도 갖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인식이나 해석의 행위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의미 부재의 공간으로서, 관객에게는 무엇보다 극단적인 결핍과 상실, 혼란의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것이야 말로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가공되지 날것의 경험으로서, 이를 통해 관객은 비로소 이성적 사유의 틀에 억눌려 볼 수 없었던 것들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촉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현대연극이 보여주는 ‘반-연극적’ 전략은, 이처럼 이성적 자유 내지 예술적 재현의 요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 즉 이성적 요구에 억눌려 감각되지 않은 새로운 힘들을 포획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연극이 진정성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타자성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타자성이 해석의 대상으로서 이미 주어진 사실이 아니라, 기표들 사이에 생성되는 관계들 사이를 유영하면서 능동적으로 구성해나가야 하는 ‘사건’이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예술에 있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분법적 경계는 무너진다. 오늘날 예술은 보이는 것이 아닌, 그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것에서 자신의 임무를 발견한다. 그래서 그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제공한 특정담론을 따라 인지적으로 행동하게끔 유도하기 보다는, 관객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보고’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예술의 창조행위는 바로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을 역동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관계들의 그물망을 엮어내는 일이다. 현실은 항상 앞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항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유토피아적 연극 공간이 의도적으로 “(관객의)시선을 유기적으로 체계화시켰다면”(Thies-Lehmann 285ff), 이 에테로피아적 연극 공간에서는 관객이 스스로 시선을 조율하면서 가운데 “자신이 수용한 것을 직조해 패치워크로 만들면서”(Deck 17) 공간을 거듭 새롭게 창출해간다. 에테로토피아, 더 나아가 ‘공간적 전환’이 마찬가지로 60년대에 문화학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던 ‘수행적 전환’과 연관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수행성은 배우의 행동과 그에 대한 지각이 동시적으로, 순간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통칭하는 바, 이처럼 일체의 의도성이 배제된 무중력의 연극공간 속에서는 관객의 시선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하겠다.
한국 연극에서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 작업에서나 여전히 일관된 서사, 특히 인물의 구체적인 심리적 행위구조가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진정한 화두를 제공하지 못한 채 예전의 관습들만을 무기력하게 재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이 모더니즘적 시각이 20세기와는 또 다른 이 오늘날의 21세기적 현실을 담아냄에 있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특히 최근 10-20년 사이에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반-연극적 실험들은 우리에게 더없이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딜레마에 빠진 한국연극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비판적 화두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Die heutigen Experimente, die seit fast 20 Jahren in den Theaterbereiche durchgeführt werden, sind so verschieden, daß wir gar nicht voraussehen können, wieweit sie ihre Grenze mehr erweitern werden. Sie brechen alle vertrauten theatralischen Konventionen, ob diese Konventionen mit Text, Schauspielkunst oder Raum usw. zu tun haben. Und sie fragen sich selbst, was Theater in der heutigen simulierten Gesellschaft bedeuten soll. Die vorliegende Arbeit untersucht anhand einigen Aufführungen, die von solchen Selbstbefragen ausgehen, wieweit sie sich von den tradtionellen Theaterabeiten entfernen und welche neue Theaterästhetik sie herzustellen versuchen, um der gegenwärtigen Gesellschaft, besonders nach 1990 Jahre, zu entsprechen.
Nach dem Zusammenbruch des Ost-Blocks hat sich die Welt radikaler denn je verändert. Durch die revolutionären Technologien wie Mobilfunk und Internet verwischen sich die Grenzen zwischen Wirklichkeit und Fiktion, zwischen Original und Nicht-original mehr und mehr. Die letztliche globale Finanz- und Wirtschaftskriese hat die ganze Welt in Schockzustand versetzt, aber man scheint bei den verschiedenen Schreckenzeneraien und den negativen Meldungen daraus noch keine "Lehre" gezieht zu haben.
Die Experimente, die in dem Bereich der zeitigen Theaterarbeiten gewagt werden, sind die Versuche, die Theater selbst macht, um eine den radikalen gesellschaflichen Veränderungen entsprechende neue künstliche Aufgabe zu suchen. In dieser Arbeit möchte ich sie „antí́-theatralische Strategien nennen, weil sie jenseits der konventionellen theatralischen Arbeitsweise liegen. Diese Räume, wo solche Aufführungen gespielt werden und natürlich auch den Zuschauerraum einschließen, sind „die Räume des Abwesenheit und des Abweichens„, weil sie dem gewöhnlichen Wunsch des Publikums, alles zu sehen, entgegenkommen. Sie fordern dem Zuschauer, der auch zu ihren wichtigen theatralische Element gehört, daß er an ihren Aufführungen mit den ganz anderen Sichtweise als den überlieferten aktiv „teilnehmen„ muß. Sie wollen ihre Aufführungen zu den Erfahrungsräumen machen, wo der Zuschauer über sich und sein eigenes Leben selbst reflektieren kann, indem er die wahrgenommenen Ereignisse zu seinen eigenen Erfahrungen zusammenfügt. Dadurch wird die Dichtonomie zwischen den Sichtbaren und den Nicht-Sichtbaren entschär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