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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예술교육학회 예술교육연구 예술교육연구 제16권 제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27 - 148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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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화민국 후기 미술 발전의 대표적 두 기제(機制)인 국민정부의 미술정책과 미술학교의 관계를통해 중화민국 후기 미술과 미술계의 주요 발전 맥락과 성격을 고찰한 것이다. 1920년대 후반 국민혁명을 통해 전국을 통일한 국민당은 이후 훈정을 통해 강력한 통치체제를 마련했다. 그에 따라 초기의 혁명노선은 점차통치노선으로 전환되고, 미술정책 역시 애초에 자유주의 성향의 미육이념에서 우파 삼민주의에 근거한 도구주의 노선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민국 후기 미술학교들의 운영과 위상에도 다음과 같은 영향을 끼쳤다. 먼저 정부 수립 초기자유주의 이념에 근거해 창설된 국립항저우예전은 정부에 맞서 순수예술의 학술적 위상과 시대예술을 주장하고 예술운동을 전개했으나, 좌익미술과의 연관으로 인해 탄압을 받게 되었다. 전통주의 성향의 국립베이핑예전은 정부의 압박 하에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했으나, 정책의 잦은 변동 및 중일전쟁으로 인해 침체되었다. 반면 사실 기법의 아카데미즘을 표방한 중앙대학 예술계와 내전 시기 국립베이핑예전은 정부의 문예통치 노선과조화를 이루어, 사실상 민국 후기 최고 미술학부로 부상해 새로운 민족미술 수립과 그것을 중심으로 한 미술계재편에 앞장섰다. 그러나 국민정부의 이러한 미술통치는 이념과 정권 차원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결과, 그 최대 성과인사실주의 아카데미즘은 국민정부도 미술학교도 아닌,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의 전리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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