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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3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45 - 27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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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에는 淸에서 朝鮮에 보낸 몇 건의 문서가 소장되어 있고, 여기에는 「淸太宗詔諭」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다. 모두 8장으로 구성된 이 문서들은 청조 황제 명의로 발급된 공식 외교 문서로서, 현재 우리나라에 몇 점밖에 남아있지 않다. 특히 崇德 연간의 문서는 丙子胡亂의 마지막 국면을 보여주는 문서이기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悔恨을 느끼게 하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 문서들은 홍타이지가 大淸國 수립의 명분으로 삼았던 大元의 傳國璽 ‘制誥之寶’가 찍힌 몇 안 되는 현존 문서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들 숭덕 연간 문서의 내용을 󰡔淸太宗實錄󰡕의 해당 내용과 대조한 결과, 康熙 연간 󰡔淸太宗實錄󰡕을 重修·校訂하는 과정에서 청조 초기 사료에 대한 적지 않은 수정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여기에는 儒家的인 정치 문화에 익숙해져가는 청조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숭덕 연간의 문서와 강희 연간의 문서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文書와 御寶의 文字가 숭덕 연간의 漢文에서 강희 연간의 滿漢合璧으로 바뀐 사실과, 漢文 ‘制誥之寶’를 冊文·詔諭·誥命 등에 구별 없이 사용하던 것에서 誥命·詔諭·勅諭에 대해 각각 滿漢合璧의 ‘制誥之寶’․‘皇帝之寶’․‘勅命之寶’를 사용하게 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개 入關 직후인 順治 초기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청조의 正體性 형성과 함께 문서 작성의 範例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검토한 문서들이 청조와 조선의 대외 관계 속에서 생산된 문서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서와 어보의 문자가 숭덕 연간의 한문에서 입관 이후 만한합벽으로 변화한 데에는 청조의 正體性 형성 과정과 함께 청조가 조선을 인식하는 입장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실제 문서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실제 문서 자료를 발굴·연구해야 하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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