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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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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9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41 - 7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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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대구 지역 조선인의 지방의회 참여 실태를 대구부협의회·부회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일제는 부의 자문기관으로서 1914년도에 부협의회를 설치하여 협의회원을 임명하였다. 1920년부터 협의회원은 선거로 선출되었고, 1930년에 부회로 개칭되면서 의결기관으로 전환되었다. 1920년부터 1939년까지 총 일곱 차례 선거가 실시되었다. 유권자는 일정 이상의 자산을 가진 성인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대구부의 경우, 유권자 수는 전체 부민 중 조선인은 1~2%, 일본인은 4~9% 불과하였다. 대구부 인구 구성에 있어 조선인은 70% 이상을 차지하였지만, 유권자 수에 있어서는 대체로 30~40%선에 머물러 민족 간 경제력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결과 의원 정원에서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저 30%에서 최고 47%, 평균 38% 정도였다. 1920년대 선거의 경우 초선의 비중이 매우 높아 의원 교체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대체로 30대였고, 특히 1926년의 경우 초선 4인 모두가 20대였다. 1930년대 선거에서도 1939년 선거를 제외하고는 2/3이상이 초선으로 채워졌다. 평균 연령은 1920년대보다 높아져 30대 후반에서 40세까지였다. 임명직이었던 1910년대에는 지역 명망가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선거제로 변경되면서 지역 사회 활동이 많은 인물 등 신진 인사의 진출이 두드러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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