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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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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2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41 - 7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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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부터 항왜가 발생하였는데, 기록에 따라서는 항왜가 1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항왜는 母國인 일본을 등지고, 조선에 歸化한 사람들이지만,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희생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에 이들이 어떻게 조선에 정착해서 살아갔는지가 현재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구시 우록리는 항왜 사야가(김충선)의 후손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大邱府 戶籍臺帳」에는 17세기 후반 이후의 항왜 후손의 家系 모습이 잘 남아 있다. 김충선의 후손들은 우록리에서 상위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김충선의 손자인 김진영이 남긴 문집에는 항왜 후손이 조선 사회에서 외롭고, 정착하기 쉽지 않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 항왜들은 항왜 가문간 혼인을 통해 조선 사회에서의 안착을 도모하였고, 洞約을 만들어 거주하는 마을(우록리) 내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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