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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1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03 - 246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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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시발은 근대지식인과 상인 집단의 결합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대구광문사가 대구지역 애국계몽운동의 상징이라면, 수창사는 대구지역 상인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최근에 발견된 수창사의 각종 자료를 통해 수창사의 설립 경위와 수창사 사원의 성격을 살펴봄으로써 수창사가 어떤 경위로 국채보상운동에서 중심 역할을 하였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개항과 경부선이 개통된 1904년 이후 낙동강 상권은 일본 상인층에 의해 잠식되고 있었다. 부산항과 낙동강 무역에서 일본상인과의 경쟁에 위협을 느낀 대구지역 상인은 수창사를 설립하고 엄궁과 하단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수창사는 기본적으로 비특권적 민간 상회사이고, 사원이 각자의 지분을 가지고 거래창구를 통일화한 합명회사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창사의 사업영역은 사원들의 사업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대금업무와 중개업 및 창고업이었다. 그러나 일본상인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수창사의 규모는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축소되었고 1905년에는 부산지역의 지점을 철수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계몽사상이나 자강운동과 연계되어 이들을 국권회복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하였다. 수창사 사원의 상당수가 국채보상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수창사는 대구민의소 사무소나 국채보상운동의 수전소로 활용되었다. 또한 수창사 사원의 인적 네트워크가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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