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모스뜨로이”의 언어와 텍스트: 서지학적 정보
16세기 중세 러시아 시기의 대표적인 문헌인 <도모스뜨로이>는 여러 각도에서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었지만 어휘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연구가 완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M. A. 소꼴로바의 연구 결과 이 문헌에 대한 어휘카드 목록이 작성되어 현재 상트페테르부르그 국립대학교 학제간 사전편찬실에 보관되어 있지만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음식어휘와 같은 특정주제를 포함하는 일상어휘의 연구는 당대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로서의 기능을 할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문화를 연구하는 우리와 같은 외국의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도모스뜨로이>에는 약 150 종류 이상의 음식 관련 어휘가 기록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 음식들의 조리 및 보관 방법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어서 러시아 정교회의 각종 축일과 일상생활에 따라 사용되는 음식의 특징과 전반적인 당대의 음식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도모스뜨로이>의 저자와 여러 판본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들이 공존하지만, 블라고베쉔스크 지역의 사제인 실베스뜨르가 저자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판본은 크게 3가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 논문에서는 가장 많은 양의 음식어휘를 수록하고 있는 첫 번째 판본과 이를 토대로 번역 출판된 1994년 <나우까>편 <도모스뜨로이>를 연구의 1차 자료로 삼았다.
2. “도모스뜨로이”의 몇 가지 음식어휘에 나타난 언어문화학적 특징
러시아인의 음식문화는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중세시기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정교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이어서 자신의 음식을 철저히 금식용과 금식 이외의 용도로 분류하고 있다. 교회의 절기에 따라 금식을 지키는 행위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며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인의 일상 식단에서 식물이나 생선, 당분이 많이 포함된 요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도모스뜨로이>의 18, 50, 64, 65장 등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여러 종류의 경건한 금식용과 부정한 일반용 음식의 종류가 자세하게 열거되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러시아 음식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만한 7개의 어휘를 선별하여 (끓이는 음식의 대표로서 каша, 종교적 축일용 음식의 대표로서 кулич와 пасха, 일상생활용 음식의 대표로서 сыр, 굽는 음식의 대표로서 хлеб, 마시는 음식의 대표로서 квас와 мёд) 어원과 의미와 언어문화론적 관점에서 이들 어휘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보았다.
каша: 공통슬라브어로서 현대러시아어와 방언에도 널리 사용되며 хлеб과 함께 러시아인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에 속한다. <도모스뜨로이>에 보면 현숙한 여주인은 여러 종류의 каша를 잘 끓일 수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고 있으며, ‘생선죽’을 의미하는 кашка도 자주 등장한다.
кулич와 пасха: 부활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전통 케이크인 두 음식은 동의어 관계에 있다. 차이가 있다면 кулич는 둥근 모양이고 пасха는 4각의 피라미드 모양이라는 점이다. 또한 пасха는 처음부터 성스러운 의미로만 러시아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반면, кулич에는 ‘둥그런 빵’을 뜻하는 어원적 의미가 우선적이고 성스러운 의미는 부차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сыр: 공통슬라브어로서 다른 인도유럽어에도 등가어휘가 존재한다. 종종 ‘творог’을 의미하기도 하는 сыр는 러시아의 전통 결혼예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음식이다. 부활절에 모든 정교신자가 кулич와 пасха를 한 조각씩 먹는 것처럼, 결혼식에서는 신랑신부와 부모와 모든 하객들이 둥근 빵과 치즈를 한 조각씩 먹는 전통이 있다. сыр와 творог에서 파생된 сырник과 творожник도 서로 동의어 관계에 있다.
хлеб: 러시아인의 가장 기본적인 주식이면서 온갖 종류의 빵들을 대표하는 유개념어(상위개념어)의 기능을 한다. 어원적으로는 고트어나 켈트어로부터 차용되었다고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калач, булка, пирог와 같은 흰 빵과 대비되는 신 맛이 나는 효모가 들어간 흑빵을 통상 хлеб라고 부른다. <도모스뜨로이>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ситный, решетный, квасной, бухоныйхлеб이 등장하며, 좋은 아내는 이 모든 것을 다 잘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квас와 мёд: 나맥과 엿기름으로 만드는 신 맛이 나는 러시아인의 전통 청량음료인 квас는 어원적으로 ‘кислота, кислый вкус’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квас - хлебный, кисло-щейный, солодовый, бражный, медвяный - 가 <도모스뜨로이>에 기록되어 있다. Мёд는 예로부터 제사용 꿀죽인 кутья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미 10세기경부터 주류와 유사한 음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도모스뜨로이>의 65장에 다양한 꿀의 종류 - обарной, белой, паточный, простой, боярский, ягодный мёды - 가 등장하며, 오늘날 현대러시아어 사전에서 주류 음료로서의 의미는 고어체라는 표지를 띠게 된다.
3. 중세시대 러시아 가정의 종교-음식 생활문화 규범집으로서의 “도모스뜨로이”
모든 낱말은 B. A. 라린이 말한 것처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의 삶의 증거이자 기념비적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어휘의 역사는 가장 오래된 문헌의 연구에서부터 시작하여 민간의 속어나 방언에 나타난 자료로 문헌연구를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에서는 러시아 민족의 음식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만한 7개의 어휘를 선별하여 언어문화학적으로 살피고 분석하였다. 이를 통하여 음식을 지칭하는 어휘와 러시아적 멘탈리티와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수 있었고, 이런 연구의 방향은 향후 고대러시아어 문헌의 언어문화학적 측면에서의 연구에 대한 중요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V. V. 꼴레소프의 정의에 따르면, <도모스뜨로이>는 중세러시아 시기 가정과 산업과 종교생활의 종합적인 규범집으로 간주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런 여러 측면 중에서도 음식과 이와 관련한 종교적 측면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였고, 결과적으로 <도모스뜨로이>의 성격을 16세기 당시에 존재하던 종교적 규범에 따른 중세 러시아 가정의 종교-음식 생활문화 규범집으로 규정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점에 연구대상 텍스트와 여기에 적용된 언어문화학적 연구방법의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얻어진 연구결과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도모스뜨로이> 이후의 대다수 문헌들이 일상생활의 어휘를 기술할 때 많은 경우 이 텍스트에 기록된 어휘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