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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연구학회 어문연구 어문연구 제57권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35 - 16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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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사족의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16세기의 시공 속에 있다. 그리고 이 시공 속에 존재하는 시조 작가의 삶의 조건이 크게 변하여야만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시공에 대한 인식 태도 역시 변화될 수 있다. 그런데 17세기 사족들은 오히려 사족의 지배가 공고해지고 신분적인 의미가 확실해지면서 반상제가 굳어지는 사회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즉 신분적 구별은 더욱 뚜렷해지고 사대부의 사회·정치적인 지배적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 과정에서 관료로 입신을 결행하여 유교적 교양과 능력을 갖춘 다수의 양반 세력들은 스스로를 다른 계층들과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 그러므로 환로여부와 상관없이 사족 집단 내부의 계급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타 계층으로의 외연의 확대를 막는 폐쇄적인 지배 체제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조류 속에서 대부분의 17세기 사대부들은 양반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신분 체제에서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향촌에 부거하는 재지 사족 작가들 역시 사대부 집단 내부의 균질화를 주장하면서 문화적, 의식적 동질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작품 속에서 사대부적 미의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개별적인 작가에 따라서 작품들은 다른 양상을 띠었다. 특히 신계영의 경우는 경계선적인 처지에 놓여있었을 확률이 높다. 신계영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적 문화를 충분히 체험하였고, 인조대의 현실적인 정치 노선과 명분론의 대립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런 맥락 속에서 그는 관료이자 선비로서 출처의 두 세계를 대립적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신계영의 처지는 사와 대부를 모두 갖춰야 한다는 사대부 본래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17세기 사대부로서 전형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시조 창작도 문학 행위로서 시인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조건의 반영이라고 했을 때, 신계영은 재지사족들의 보수적인 이념 지향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시대적으로 앞서는 미의식을 완전히 체현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는 16세기의 도학적이고 전범적 미의식과도 거리가 멀었고, 공간적으로는 자신과 동일한 환경 속에 있지만 출사의 경험이 없는 재지사족들과도 거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치사 후에 창작한 시조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는 시적 자아는 세계관적으로 무장한 처사도 아니고 출사의 기회를 잡지 못해 상황논리에 쫓긴 야인의 형상도 아니었다. 강호시조에 나타나는 자연은 작가가 시공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가진다. 진지하게 자연을 마주하는 유자에게 강호자연은 천지(인식의 경계)가 되기도 하고 산수( 예술의 대상)가 되기도 하고 토지(생산수단)가 되기도 한다. 덧붙여서 자연은 때로는 천하를 의미하기도 하는 데 그것은 경세의 판도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자연임을 의미한다. 이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대개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어떠한 면이 강화되기도 한다. 사대부 시가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은 산수의 의미가 강하지만, 인식론적 경향성이나 생산 수단적 의미가 강해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강호자연이 생활 터전으로서 묘사되는 경우에 시조 시인 스스로가 경작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피지배 계층인 누군가가 상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공 관념은 결국 생활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신계영의 시조에서도 주요 생활 공간으로서 자연을 인식하는 태도가 나타나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특히 <전원사시가>에서는 서두인 봄 부분에서부터 이러한 생활 공간으로 들어가는 모티브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생활 공간에서 시적 자아가 집중하는 것은 경작과 의식주의 일상사보다는 자연경물의 조화로움과 그것으로부터 느끼는 미적 쾌감이다. 시인은 월선헌을 중심으로 그 주위의 산․골짜기․강․포구로 이어지는 자연물들이 모두 제 자리를 찾아 놓여 있는 배치와 꽃 피고 잎 지고 바람 불고 눈 내리는 사시의 흐름이 가져오는 반복을 통해서 조화의 리듬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질서는 전통적으로 사대부적인 미의식의 기반이다. 그러므로 신계영이 <사시가>를 강호자연으로부터 받는 미감을 드러내는 자기 표현 양식으로 선택했을 때, 이미 그는 사대부 시조 창작의 문맥 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시조에서 이러한 기존의 형식 속에서 변화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계영의 연시조에서는 규정된 형식의 틀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메시지와 시적 논리의 차원에서 새로운 국면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사시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사시의 균형적인 배열을 지양하고 사시의 마지막 부분인 겨울을 확장하고 제석을 덧붙여서, 객관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인이 감지하는 주관적 시간을 연장시켰다. 이것은 자연과 자연물을 인식하여 시적 대상으로 삼을 때 보편성과 규범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사대부 시조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개 강호시조를 규정하는 것은 소재나 시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심리 구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신계영의 시조는 자연에 대한 사대부 주류적인 인식 태도의 자장 속에 있으면서도 그 구심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원사시가> 속에 탄로가에 해당하는 ‘제석’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 제석의 부분이 포함됨으로써 전원 속 은자의 형상이라는 사대부적인 이상이나 동경이 아니라, 시인 스스로의 현존의 문제가 부각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호시조로서 <전원사시가>에 나타나는 자연은 농경이 주가 되는 일상과 심미와 흥취의 대상인 산수가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이러한 시공 속에서 신계영은 질서와 규범성을 강조하는 유가적 자연관이라는 선험적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존재 조건과 체험에 따라서 자연을 작품 속으로 끌어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때 사시의 운행 역시 변치 않는 진리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한 순환 속에서 변모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이 자연 공간 속에서 윤리적 완전함이 아니라, 자연물과 자아 사이의 심미적 조응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신계영의 시조에서는 사대부 집단의 규범적 시언어가 아니라 작가 개인의 언어가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시조를 재도론적 틀 안에서 창작하려 했던 전대(前代) 사대부 시가의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 국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신계영의 시작 태도는 후대 사대부 시조의 변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thesis, I explicated the meaning of the nature expressed in sijo created by Gye-Young Shin who had lived in the 17th century as an well-known intellectual and bureaucrat in Sadaebu class. The consciousness of poet to the nature is well brought out in considering the time and space in works. This inquiry therefore focused on the analysis of structual property of space and time depicted in his sijo works, Junwonsasiga(田園四時歌)-the song of the rural life and the four seasons. The time consciousness pursued in sasiga, the four seasons song, worked by Sadaebu(士大夫) emphasizes the time which is in perpetuity. But that time exposed in Junwonsasiga created by Gye-Young Shin was to be subjective and segmental. The part of winter song was extended to four verses, while the part of other seasons each had two verses. It meant that the poet expressed his will to enlarge the time of winter in his view of the subjective time. Moreover, it proved that he had a different perception to the time and the space, unlike Sadaebu poets of the 16th century. It didn't show up a priori idea of nature in the poetic space of Junwonsasiga, and also it was not depicted the poetic speaker as a real farmer. The poet in Junwonsasiga didn't seek the axiom of nature but enjoyed a special beauty of scenery around his hometown and a pavilion which named Walsunheon(月先軒). In this aesthetic space, he had not enjoyed scenic beauty too far but mixed in neighbor community in everyday life. It was an open and exalting space that an actual poet who has a strong personality had lived in. In his works, Gye-Young Shin had not try to make an ideal model of Confucian eremite. And he as an old man in his eighitieth depicted an anxiety of life and a vain attempt to get the youthfulness once again. That poetic speaker as compared with the sijo poets of the 16th century could express his feelings and impressions on poetic object more freely in works. When Gye-Young Shin chose Junwonsasiga for his self forms of expression that shows he had already played an part in the context of creation of Sadaebu sijo. Althought he had composed poems according to be established creative rules of sijo in his works, the new messages of human life and sensual beauty of the nature had appeared and he sought a new poetic logic to compose a poem. In this process, he could acquired the his own view of nature deviated from established Confucian thought which accentuates a moral standard in poems and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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