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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43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7 - 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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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군사체제는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분리되어 있었다. 평시체제 하에서 군대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뉘었고, 전시체제에서는 중앙군과 지방군이 통합되어 출정군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출정군의 지휘는 봉명사신(奉命使臣)인 체찰사 등이 담당하였다. 즉 조선전기에는 유사시에 중앙에서 체찰사, 순찰사, 방어사 등을 임명하여 출정군을 지휘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안이 해결되면 이들은 해임되어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전기의 군사체제는 임진왜란 초기 패전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평상시 군인들의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또 지휘관과 군인이 전혀 모르는 상태라 지휘·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패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조선후기에는 평시체제와 전시체제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군제를 개편하였다. 조선전기에 유사시에만 파견되는 체찰사, 순찰사, 방어사 등이 상설직으로 바뀌었고, 또 유사시 즉시 전쟁에 임할 수 있는 군영이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에는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일치되어 항상적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 군사체제를 취하였다. 이에 왕과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방어에 허술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이 있으면 계속 군영을 증설하고, 방어체제를 강화하였다. 한양 도성 안에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도성 3군문을 설치하고, 경기도에는 수도외곽 방어를 위하여 수어청과 총융청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수원, 장단, 광주에 3개의 방어영을 설치하는가 하면, 강화도에 진무영, 개성에 관리청까지 설치하였다. 2중, 3중의 방어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와 조정에서는 강화도, 남한산성, 대흥산성 등 기존 보장처의 효용성에 의혹과 불신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성중심 방어론이 등장하고, 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이 축조되었다. 중앙집권적 왕조국가에서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일치되자, 국왕과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방어체제를 중복적으로 설치하고, 또 자신들의 보장처의 효용성에 의혹이 생기면 또 다른 방어체제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사체제는 국민 전체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조직되어야 했지만, 중세 왕조국가에서는 국왕과 지배층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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