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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29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95 - 32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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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상필 교수가 200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명집』의 초기 간본들과 관련하여 김윤수 씨의 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필자를 비판한 데 대한 응답이다. 이 교수는 문경호의 기유본 발문 중에서 “순찰사 유영순 또한 공역을 도왔다.”는 한 구절을 鐵案으로 삼아, 이 구절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필자를 비난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논거인 까닭에 필자는 남명학파의 초기 역사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에서도 경상감사가 서원의 일에 관여했다는 기록은 모두 『道先生案』과 어긋남을 증거로서 제시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지적이 이 교수의 주장에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가 「덕천서원중건기」의 기록을 왜곡하고 「신산서원기」 중 해당 부분의 贗作說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무리를 범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남명집』의 초간본이 임인년에 간행되었음은 기유본 발문에 명기되어져 있으며, 『고대일록』 속에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임인 전해인 신축년(1601) 조에 ‘留寺看役’ 등 해인사에서의 간행 작업에 관한 기록들이 보이는 점이 그것이다. ‘看役’ 또는 이와 유사한 표현은 이후의 『고대일록』에도 많이 보이고 있는데, 그것들에서도 이 용어는 타인이 하는 작업을 감독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정경운은 벗들이 모두 귀가한 후에 혼자 해인사에 남아 이러한 일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판각이 아닌 편집 작업의 의미로는 해석될 수 없다. 필자의 『남명집』 판본 연구도 이제 완결 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차제에 전체 판본 계통과 판본명에 대한 그 동안의 성과를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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