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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17호
발행연도
2004.1
수록면
61 - 9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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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庵 鄭 은 1683(肅宗 9)년에 晋州 玉峯에서 태어났다. 字는 敬甫이고, 명암은 그 號이다. 明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여 일생 동안 仕宦하지 않고 초야에서 포의로 지내다 일생을 마친 문학자이다. 그는 명나라를 숭상하는 인물 가운데서도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는 청나라는 미개한 오랑캐로 간주하여 철저하게 배척하여 인정하지 않았다. 명나라를 높은 학문과 찬란한 문화를 가진 중국 역사상의 正統으로 인정하였다. 사람답게 사는 삶의 질이 높은 이상적인 국가로 명나라를 생각하였다. 그래서 청나라가 지배하는 세상에 나가서 벼슬하는 것을 더럽게 생각하였고, 어떻게 하면 중국 대륙에서 청나라를 섬멸하여 축출할까 하는 것이 일생의 話頭였다.명암의 사상과 문학은 모두 이 화두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그의 號마저도 明庵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의 고결한 정신자세는, 朝鮮의 伯夷叔齊라 일컬어 손색이 없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치하고 있던 시대에 태어나 살았던 明庵은, 名利를 초탈하여 명나라의 회복과 청나라의 축출을 염원하면서 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서, 出處의 大節을 지켜 곧게 깨끗하게 艱苦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는 선비 지식인으로서 국가의 운명에 무관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伯夷叔齊 이래로 이어져 온 선비의 節義사상이 이 시대상황에서 명암을 통해 體現된 것이었다.그의 시는 淸淨하고 眞率한 肺腑에서 흘러나온 것이기에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詩想이 다채롭고 진지하고, 표현의 기법도 독창적이라 이전의 시를 답습한 것이 아니고, 아주 逼眞하게 사물을 묘사하였다.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섬세하여 그의 시는 내용적으로 뿐만 아니라 文藝的으로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그의 산문 가운데는 「矗石樓重修記」, 「義巖碑記」 등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글이 있지만,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글은 여러 종류의 遊山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유산록은 산수문학의 典範으로서 韓國漢文學史에 등장시킬 가치가 있다. 本考에서는 지금까지 학계에 소개된 적이 없었던 明庵 鄭 의 생애와 그의 詩文學의 독특한 면모를 밝혀, 韓國漢文學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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