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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서예학회 서예학연구 서예학연구 제3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3 - 5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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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857-?)은 신라 말기 학자로 경주 최씨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그의 사상과 종교적 성향으로 볼 때 유자이면서도, 불교 및 도교사상을 깊이 체득하고 융화한 인물이었다. 다양한 사상을 추구한 최치원은 儒․佛․道 합일이란 차원에서의 ‘風流’를 말하였다. 철학적 풍류이면서 미학적 풍류라는 특징을 갖는 이러한 풍류는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보다 구체적으로 ‘허정무욕의 담박성’, ‘독선기신의 은일성’, ‘원융무애의 돈오성’으로서의 풍류로 잘 나타난다. 그는 신라에 돌아온 후에도 중국 불교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많은 불교적 글과 고승의 전기를 찬술하였다.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이『四山碑銘』이다. 『四山碑銘』은 세 승려와 사찰건립에 관한 것을 王命에 의하여 기록한 것으로 이 네 편의 金石文이 모두 불교와 관계되는 비문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불교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資料이기도 하며 동양사상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유가의 도덕규범으로 사회를 평가할 정도로 유가원전의 옛 구절들을 인용하였다. 詩 ․ 書 ․ 易 ․ 禮記 ․ 春秋五經․四書는 물론 그 밖의 유가경전을 두루 인용한 비문은 여느 비문과 달리 유․불․도 삼교사상이 서로 混融無礙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하겠다. 최치원의 행적을 보면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고 만다. 육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편견때문에 소외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이 품은 이상과 현실의 벽으로 인해 세속적인 삶이 부질없고 속절없음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고뇌와 번민으로 자연으로 귀의하게 되지만 그의 자연귀의는 안빈낙도의 삶을 지향하는 게 아닌 외부의 환경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시비를 가리는 삶에서 벗어나 자연에 은둔하면서 은일적 풍류의 삶을 영위한다. 이러한 삶은 안빈낙도의 삶을 초월한 天命에 의한 安命의 삶을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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