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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14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47 - 28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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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은 일제강점기 제주불교의 항일이력으로 인한 일제의 통제를 이겨내고 1930년대에 이르러 제주불교 인물들의 주도적 활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1907년 대흥사에서 출가한 안봉려관은 1908년 제주도로 내려와 운대사인 김석윤에게서 가사를 전수 받는 등의 도움을 받으며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1910년 용화사에서 안거 중이던 김석윤과의 인연으로 용화사의 영봉화상과 안도월이 용화사의 불상과 탱화를 관음사로 이운 봉안하여 관음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이 결행됨으로 인해 관음사는 1930년까지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되고 안봉려관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1924년 일제의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종교활동이 관리되면서 제주불교협회가 결성된다. 안봉려관은 제주불교포교당을 신설하여 제주불교협회 활동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안봉려관과 관음사의 노력은 제주불교협회 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그 노력에 힘입어 1930년대에 이르러 관음사는 제주불교를 주도하게 되었다. 안봉려관과 관음사의 노력은 곧 제주불교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 관음사는 불교활동은 물론 불교활동과 관련 없이도 제주도민들이 이용할 정도로 사회에 인식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봉려관은 관음사를 창건하였다는 것만으로의 가치가 아니라 근대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로 조명할 가치가 충분한 제주불교사 더 나아가 제주도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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