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24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257 - 280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881년의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과 1871년의 이와쿠라(岩倉)사절단은 앞선 외국의 근대 문물제도를 시찰하고 그 견문한 바를 자국의 개혁에 반영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일 두 나라의 근대화 운동사상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특히 조사시찰단은 우리 역사상 서구 근대문물의 수용을 본격적으로 도모하고, 나아가 일본을 조선 근대화의 모형으로 설정하는 것을 조심스레 모색한 최초의 시도로서 우리나라 근대화 운동사상 획기적 의미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나아가 조사시찰단 조사와 수행원들에게 일본시찰 경험이 국민국가 수립 혹은 서구 기술과 무기체계의 수용을 도모할 필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의 국가구상은 이후 조선의 정치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조사시찰단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크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는 10년의 간격이 있는 이와쿠라 사절단과 비교해 볼 때 그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양자의 비교를 통해 구한말 우리의 서구 문물 수용 노력의 한계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목적은 한 세기 전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근대국가를 수립하는데 실패한 이유를 조사시찰단과 이와쿠라 사절단의 근대 체험에 보이는 차이점 등을 살펴봄으로써 구명(究明)해보려는 데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