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19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5 - 67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한국에서 불교수용 당시부터 계승되던 호법신의 도상은 18세기에 이르러 하나의 화면에 군집을 이루어 표현되기 시작하고, 神衆圖라는 독립된 畵目으로 정착하였다.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등장하는 39位의 신중을 바탕으로하는 화엄신중신앙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신앙이며, 호국적인 면과 군사적인 성격이 강조된 신앙이었다. 화엄신중신앙은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성행하였으나, 조선전기 불교계가 위축되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후 양란을 거치면서 불교계는 의승군 활동을 통해 사회적 입지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17~18세기 다시 화엄교학이 성행하게 되었고, 새로운 호국신앙의 상징으로 신중신앙이 주목받게 되었다. 조선후기 승군을 통한 호국활동과 화엄교학을 이끌었던 계파는 부휴계의 碧巖門徒다. 벽암문도는 조선후기 불교계의 중흥을 위해 유교적 가치인 忠義를 기치로 삼고 호국활동을 벌였으며, 주도적으로 화엄교학을 이끌어 나갔다. 비록 조선후기 신중도에 나타나는 신중의 구성요소는 󰡔화엄경󰡕에 근거한 39위 신중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지만, 조선후기 신중도의 성립배경을 알아보는데 화엄을 배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화엄교학의 성행과 궤를 같이하여 조선후기 신중도가 등장하며, 20세기까지 의식집을 통해 신중신앙이 화엄과 관련되어 언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호국적인 승군활동과 화엄교학을 계파적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벽암문도의 영향 아래 있는 사찰들 즉, 선암사, 도갑사, 고운사, 여수 흥국사에서 신중도가 처음 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전시기부터 군사적인 성격을 강조하던 화엄신중신앙이 면면히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