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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27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89 - 12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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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도교는 민간신앙으로 성행하지 못하고,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희구하는 科儀的 도교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16세기 무렵 혁파되어 조선후기에는 국가기관 위주의 관방도교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후기 도교의 흐름은 재야에 은거하는 隱士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들은 의례중심의 과의적 도교보다는 內丹수련에 몰두하는 수련적 도교에 매진했다. 또한 조선후기 식자층은 도교의 수행법인 內丹法을 養生術로 인식했고, 양생을 통한 불로불사의 존재인 신선과 이상세계인 仙界를 문학과 미술 작품을 통해 동경했다. 그리고 서민들은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선을 祈福의 대상으로 신앙하였기 때문에 조선후기의 神仙圖는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祝壽畵 또는 吉祥畵로서의 기능을 했다. 불교는 이러한 경향을 받아들여 사찰벽화로 신선의 모티프를 수용했고, 신중도에 신선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조선후기 小品文을 통해 확인한 신선에 대한 이미지는 깊은 산에서 불로불사의 삶을 영위하는 超人이었으며, 신선은 寺庵이라는 공간에서 고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선에 대한 관념은 조선후기 불교와 도교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 있던 승려들도 마찬가지였고, 문학과 예술을 통해 조선후기 서민들과 승려들에게 친숙한 신선들을 신중도는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했다. 조선후기 신중도는 불교와 가까운 신선인 여동빈의 도상을 많은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에 비해 종리권은 소수의 작품에서만 도상을 살필 수 있다. 철괴리는 18세기 무렵 성행한 춤인 鐵拐舞를 통해서도 세간에 널리 알려진 신선이었으며, 이 시기 활발히 제작되었던 신중도에 수용되었다. 신중도에 수용된 철괴리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화보류의 도상이나 일반회화의 鐵拐圖 도상과 명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도상적 특징인 절름발이 자세와 還魂하는 연기가 표현된 호로병이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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