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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33권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95 - 12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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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으로 귀화한 북방 野人(女眞族)의 후손들이 조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하였는가를 17세기 전반의 경상도 蔚山(1609년)과 전라도 海南(1639년)의 두 戶籍大帳을 통해 살펴본 것이다. 연구 결과로 나타난 주요 양상들을 보면 첫째, 귀화 야인(후손)들은 호적 자료에서 모두 ‘向化’로 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관을 ‘黑龍江’ · ‘大元(大原)’ 등으로 기재함으로써 이들의 출자가 야인임을 판별할 수 있었다. 둘째, 귀화 야인(후손)들은 주로 沿海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漁業에 생계를 의존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으며, 자기들끼리 集居하는 이른바 ‘向化村’의 형성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셋째, 귀화 야인(후손)들은 조선인과의 통혼보다 자기들끼리 內婚하는 경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넷째,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귀화 야인(후손)들이 集居하는 일종의 ‘同族村’이 소규모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였다. 다섯째, 귀화 야인(후손)들 중의 일부는 임진왜란 때 軍功을 세워 武官職을 受職하기도 하였다. 끝으로, 귀화 야인(후손)들의 경제 형편은 일반 조선 백성보다 크게 나을 게 없었다. 결과적으로, 귀화 야인 및 그 후손들이 조선인으로 쉽게 同化되지 못하게 한 조선 사회 및 귀화 야인(후손) 양측 모두의 강한 폐쇄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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