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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15호
발행연도
2002.1
수록면
1 - 45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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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의 농사짓기는 화전(火田), 토탄층 주변 농사, 구릉지 아래의 수전, 사질 충적지대의 밭농사 등 다양한 생태계에 적응하는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여러 가지 품종을 실험해보았고, 벼농사에만 주력한 것이 아니며 벼에도 다양한 품종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곡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 볍씨(내지는 각종 낟알)자국 토기가 출현한다. 일반으로 곡물 자국은 실물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낟알자국 토기가 나오는 유적의 입지상의 특징, 그리고 간석기 조합을 같이 생각해본다면 이들 무문토기는 작물재배가 심화·완숙된 단계의 '담을 것'이란 점이 뚜렷해진다. 결국 낟알자국 있는 무문토기란 작물재배의 표상(表象)이자 농경문화의 성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관점에서 기왕에 보고되었던 무문토기의 태토를 다시금 자세히 관찰한다면 무수히 많은 볍씨 / 밭작물 자국이 나올 것으로 예견된다.농사도구로는 조갯날·외날의 도끼류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 보습, 뗀도끼 등은 굴지구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말안장 모양의 갈돌·갈판 세트도 고정적으로 출현한다. 현재까지 나타난 자료로 복원되는 청동기시대의 농사짓기는 대략 이 정도의 모습으로서 그밖에도 앞으로 청동기시대의 농사짓기를 추구하려면 무수히 많은 과제가 있겠으나 대부분 상식적인 것이며 필자도 지적한 바 있어 여기서는 모두 생략하고, 경기도지방의 생업을 다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신석기 → 청동기문화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우리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작물의 순화' → '재배' → 재배의 본격화 → 집약농경 → '농경문화의 성립'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단속적 또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농경문화가 확대재생산되는 동안 불가피하게 진행되어 갔을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의 핵을 풀어줄 수 있는 자료의 출현과, "어떻게 그리고 왜(how & why)"라는 설명과 해석이 제시되어야 하는 점에서 연구가 잘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현재, 여기에서 과거의 발굴례들을 다시 한번 재검토해보면 위의 과제들에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한강 본류를 중심한 유역에서는 미사리 유적으로부터 팔당을 거쳐 양평 양근리, 앙덕리, 대심리, 양수리, 문호리, 양주 진중리 등지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무문토기의 바탕흙이 서로간에 혼용되는 현상(무문토기의 바탕흙에 빗살무늬가 베풀어져 있다는 등의)이 자주 지적된다. 미사리 유적의 경우 경희대·성균관대·한양대 등 발굴에 참가한 팀 대부분이 그같은 토기의 출토를 보고한 바, 미사리 전지구에 걸쳐 그같은 예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는 편의적으로 신석기∼청동기의 과도적 현상으로 언급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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