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법사학자 중의 한 명 한스 핫텐하우어(Hans Hattenhauer) 교수의 『민법의 기본개념: 학설사적 개론(Grundbegriffe des Bürgerlichen Rechts: historisch-dogmatische Einführung)』의 제2판(2004) 중의 제1장 人(Person)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1931년 독일 남부 바이어른 주의 그래펠핑(Gräfelfing)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부르크(Marburg) 대학에서 수학한 후 1958년에 박사 학위를, 1964년에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독일 북부의 항구 도시인 키일(Kiel) 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독일 및 유럽 법사, 민법, 상법 담당 교수로서 재직하면서 동 대학의 총장을 지내기도 했으며(1973-74년) 1996년에 정년퇴직하였다. 현재는 독일 남서부에 있는 도시인 슈파이어(Speyer)에 거주하면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종 도뇌르 훈장(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을 받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서는 『독일 입법에 대한 神的 平和令 및 란트 平和令의 의미(Die Bedeutung der Gottes- und Landfrieden für die Gesetzgebung in Deutschland), 1958』,『처분권의 발견: 중세 독일법에 있어서의 토지처분사 연구(Die Entdeckung der Verfügungsmacht: Studien zur Geschichte der Grundstücksverfügung im deutschen Recht des Mittelalters), 1969』,『근세 사법사 사료집(Textbuch zur Privatrechtsgeschichte der Neuzeit), 초판 1967, 2판 2002』,『프로이센 일반 란트법(Allgemeines Landrecht für die preussischen Staaten von 1794), 초판 1970, 3판 1996』,『티보와 사비니: 그들의 강령적 문서(Thibaut und Savigny: ihre programmatischen Schriften), 초판 1914(Jacques Stern 編), 2판 2002』,『유럽 법치국가의 200가지 史的 증언(Der Europäische Rechtsstaat 200 Zeugnisse seiner Geschichte), 1994』,『민법 사례 연습 30題 및 답안 개요(30 Klausuren aus dem BGB: Mit Lösungsskizzen), 초판 1972』,『독일법 석의: 학생들을 위한 입문(Die deutschrechtliche Exegese: eine Anleitung für Studenten), 1975』,『聖人들의 법(Das Recht der Heiligen), 1976』,『독일 공무원제의 역사(Geschichte des deutschen Beamtentums), 초판 1980, 2판 1993, 3판 1998』,『독일 국가상징의 역사: 기호와 의미(Geschichte der deutschen Nationalsymbole: Zeichen und Bedeutung), 초판 1980, 2판 1993, 3판 1998, 4판 2006』,『독일법의 정신사적 기초(Die geistesgeschichtlichen Grundlagen des deutschen Rechts), 초판 1971, 4판 1996』,『유럽 法史(Europäische Rechtsgeschichte), 초판 1992, 4판 2004』,『독일 법언어 및 법률언어의 역사(Zur Geschichte der deutschen Rechts- und Gesetzessprache), 1987』등이 있다.
본 번역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민법의 기본 개념들: 학설사적 입문(Grundbegriffe des Bürgerlichen Rechts: historisch-dogmatische Einführung), 초판 1982, 2판 2000』은 300면도 안 되는 압축적인 형태 속에서 人, 법인, 물건, 법률행위 등 민법의 10가지 기본개념에 대한 일목요연한 학설사를 제시하고 있다. 번뜩이는 통찰로 가득한 책이지만 학계와 학생들에 의해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 점이 안타까운,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책이다.
저자는 그의 다른 저술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민법을 뛰어넘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광범한 지식과 역사 전체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민법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이라는 주제 속에서 지극히 간결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용 면을 떠나서 문장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독일어 문장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하는 이 책의 제1장 人(Person)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 민법에서도 제1편 총칙의 제2장에서 人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민법총칙을 공부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중심이 제5장 이하의 법률행위 부분에 놓이기 마련이다. 人에 관한 부분은 본격적으로 법률행위를 공부하기 전에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는 서론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핫텐하우어 교수가 잘 보여주듯이, 人 개념이야말로 사실은 민법 전체의 최상위 개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人에 관한 부분이 첫 번째 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들은 人 개념이 민법의 최상위 개념이라는 말에 선뜻 수궁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다. 人에 관한 조문도 몇 개 되지 않고, 실무에서도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는 지극히 단순한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현재에는 이렇게 인 개념이 민법 전체의 체계 속에서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민법의 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바로 이 인 개념에서부터 출발하여 민법, 아니 법 체계 전체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분명한 내용을 밝히는데 더 이상의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人과 같은 단순한 개념 속에 어떤 흥미진진한 역사적 과정이 담겨있는지를 살펴보게 되면, 무미건조하게만 보이는 우리 민법이 그 안에 얼마나 풍부한 내용을 품고 있고,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의 각고의 정신적 분투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