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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0권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75 - 20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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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불교사상을 알려주는 내용은 미신적이면서 해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속에 그의 불교사상의 참 모습이 담겨있다. 때문에 궁예 불교사상의 참모습과 뒤에 윤색되는 부문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궁예 불교사상의 핵심은 彌勒淨土를 추구한 데에서 찾아진다. 그것은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현실 사회의 혼란을 개혁하려 했다. 궁예 역시 사회의 혼란을 강조함으로써 후삼국의 동란을 조장하였다. 후고구려는 이러한 와중 속에 건국되었다. 궁예의 미륵정토 사상이 현실적으로는 서민 대중에게 이상사회의 건설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토착적 불교사상을 지향하였다. 궁예의 토착불교 사상은 王昌謹이 산 오래된 거울에 관한 연기설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철원에서 궁예가 먼저 일어나지만, 왕건이 그를 축출하고 신라와 백제를 통합하여 통일 고려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궁예의 토착 불교사상은 뒤에 다라니를 강조하는 등 윤색되었을 지라도, 본래는 서민 대중에게 친근한 신앙을 포용하였다. 궁예의 토착 불교사상으로 熾盛光如來나 九曜 또는 鎭星신앙을 들 수 있다. 치성광여래 신앙은 본래 관음신앙까지를 포용한 듯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용녀와 연관되어 작제건 또는 고려 왕건과 연결되었다. 고려 건국 이후에 궁예의 불교사상은 정리되거나 윤색된 모습으로 전해졌다. 우선 바로 정리된 부분은 왕건의 통일정책과 맞지 않은 면이었다. 고려통일 이후 사회체제의 안정을 꾀하던 왕건은 사회 혼란을 조장하면서 현실 사회를 개혁하려는 미륵정토 사상을 배척하였다. 서민 대중과 연결된 궁예의 토착 불교사상은 고려 사회에 다소 수용되었지만, 그 중 대부분의 내용이 미신적 모습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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