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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48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 - 4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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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는 그 분량이 방대하고 구성 또한 복잡했던 탓에 실제 연행 현장에서의 활용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세종은 <용비어천가>의 제작 직후 다시 <보태평>ㆍ<정대업>의 제작에 착수하여 육룡의 사적을 ‘文德’과 ‘武德’으로 특화된 주제적 범주에 따라 재해석 내지 재배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태평>ㆍ<정대업>의 내용은 대부분 <용비어천가>로부터 연원하지만, ‘太宗에 대한 강조’ㆍ‘武人的 영웅형상의 부상’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는 <용비어천가>보다 한층 강화된 주제와 어조를 전달한다. 특히 두 번째 특성과 관련하여, 세종은 <보태평>과 <정대업> 가운데 <정대업> 쪽에 더욱 큰 비중을 둠으로써 祖宗의 여러 행적 중에서 특히 강인한 무장으로서의 위상을 한층 앞세워 놓았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는, 고려말의 상황을 바라보는 왕실과 신료 사이의 견해차로부터 그 원인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조선왕조 창업의 추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두고, 신료들이 여말 신진사대부들의 적극적인 개혁활동과 성리학적 이념의 도입을 강조했던 반면, 세종은 홍건적ㆍ왜구 등 이민족의 침입을 격파했던 祖宗의 업적과 그 영도력을 특히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조종의 무인적 영웅형상이 강화된 형태로, 즉 <정대업>이 <보태평>보다 부각된 형태로 그 비중이 정해진 것이라 해석된다. 그러나 세조대에 <보태평>ㆍ<정대업>이 종묘제례악장으로 공식화 되면서 그 내용에도 변개가 나타난다. 세조대의 개작은 <보태평>은 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되 <정대업>은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변개의 원인으로는, 세조대에 이르러 달성된 왕권의 확립을 들 수 있다. 왕조의 기틀이 아직 완연히 정비되지 않았던 세종대와는 달리, 왕권이 신권을 이미 압도했던 세조대에는 세조 스스로 문무의 조화로운 군주상을 천명하게 될 정도로 정국이 안정되었으며, 때문에 양측면이 융합된 형태로 <보태평>ㆍ<정대업>의 내용과 비중이 조정되었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회례악으로서뿐 아니라 <보태평>ㆍ<정대업>을 공식적인 종묘제례악으로까지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변개가 필연적으로 요청되었으리라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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