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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63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57 - 18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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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성립된 조선왕조는 유례없이 계획된 국가였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세력들은 조선을 유교적 관료국가로 설정하였고, 성리학을 무기로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 결과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지게 되는 15세기는 최근 ‘때 이른 절정’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융성을 누렸다. 태종․세종대 활동하였던 박서생은 이러한 신왕조 건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상주 비안현 출신의 박서생은 야은 길재의 문하로서 중국 및 일본의 선진적 농업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安民을 이루고자 하였던 인물이었다. 비안 출신의 박서생은 조선 국가의 개창자들과는 다른 학문적 계보를 가졌으면서도 당시 시대적 과제였던 安民을 위한 각종 모색에 적극적인 유학자였다. 박서생의 출신지는 기록에 의하면 비안과 선산 두 군데로 나타나고 있는데 비안과 선산은 모두 연고가 있는 고장이지만 고향은 비안이고, 선산에는 別業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서생이 우리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일본 통신사에서 돌아온 세종 11년부터였다. 박서생은 농업 기술 특히 水車의 이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당시 조선은 조선 최초의 농업 기술서인 󰡔農事直說󰡕(1429, 세종 11)을 편찬하여 경상도 지역의 선진농법을 농업 후진지역에 보급하고자 하였으나, 이 책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광범하게 발달하고 있던 水田농업에 대한 방안은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박서생은 당시 자신이 일본에서 보았던 水車를 보급할 것은 제안하였다. 박서생이 제안한 수차 제작법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의 속도를 빠르게 하여 물이 속도를 이용하여 水筒을 돌리는 방식과 함께 사람이 발로 판을 밟아 물을 올리는 형태의 수차 두 가지 방식을 제안하였다. 자신의 수차제작 방식이 공인의 부주의로 올바르게 제작이 되지 않아 직접 공조참의로 재직하면서 학생 金信과 더불어 정교한 제작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박서생의 水車 도입론은 安民의 방법이기도 하였다. 농업 생산력을 올려 농민의 생계를 안정시키고자 한 것으로 이는 스승이었던 길재로부터 배운 학문을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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