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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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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5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35 - 16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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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이 유교국가가 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교국가의 키워드를 국왕으로 보고 조선 초기 대표적인 유학자 권근이 정립하려고 하는 국왕상을 조명해 보았다. 권근은 유학관련 저술과 상소를 통해 유교국가의 이상적인 국왕의 면모를 제시하였다. 본고에서는 권근의 저술 중 󰡔서천견록(書淺見錄)󰡕과 󰡔시천견록(詩淺見錄)󰡕, 그리고 상소 중에는 우왕에게 올린 3편의 상소와 정종에게 올린 1편의 상소 그리고 태종에게 올린 3편의 상소를 대상으로 하였다. 본고에서는 권근이 이들 상소에서 ‘하늘, 부모, 백성, 자신, 신하’ 등 5요소에 대한 국왕의 태도 정립을 요구하고 있음에 착안하여 국왕상의 면모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권근이 󰡔서천견록󰡕, 󰡔시천견록󰡕 등 경서에 대한 견해에서 제시한 국왕상은 공경의 마음과 구덕(九德)을 갖추고 전조(前朝)의 신하들을 포용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18세의 혈기방정한 나이에 권신의 꾀임으로 정사를 게을리 하고 놀이에 빠진 고려 우왕에게 요구한 국왕상은 밤에 자고 낮에 깨어 있으며 바른 자세로 덕성을 함양하는 수양의 자세였다. 그러나 우왕은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다 결국 24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고 죽게 된다. 정종에 대해서도 재미에 탐닉하지 말고 국왕으로서의 체통을 지킬 것을 건의하였다. 정종은 2차례의 걸친 왕자의 난이라는 격동 속에 곧 왕좌에서 물러났다. 태종에게는 국왕으로서의 자기 성찰과 학문정진, 부지런한 정사 외에 전조에 절의를 지킨 신하에 대한 포상과 왕과 백성을 위해 죽었음에도 제사할 후손이 없는 인물에 대한 여제(厲祭) 등을 베푸는 국왕상을 제시하였다. 이를 받아들인 태종은 정몽주와 같이 자신이 죽인 전조의 신하를 포상함으로써 국가와 왕조 위에 ‘절의’라는 이념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유교국가의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권근은 우왕대부터 끊임없이 경연을 강조하는데 이는 성리학을 뿌리내리려는 조선 초기 상황에서 성리학으로 무장한 국왕을 만들려는 성리학자 권근의 기본적인 의도였다. 태종은 권근이 건의한 효의 강조 그리고 전조의 절의에 대한 포상 등을 통해 유교국가의 기틀인 충효를 장려하고 실천하는 국왕상을 정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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