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40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135 - 160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 문화교류의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서 한반도 남해안지역과 일본열도 북부구주지역 중간에 위치하는 대한(대마)해협은 양 지역을 왕래하는 중요한 루터로 위치 지울 수 있으며, 거기에 징금다리와 같이 떠있는 대마도와 일기도는 교류의 중계지로서의 기능을 맡고 있다.  현재까지 일기도(壱岐島)에 있어서 한일 문화교류의 흔적은 승문시대(縄文時代) 이후부터 확인되고 있다. 승문시대의 교류는 어로활동을 행하던 중에 서로 조우하였을 것과 같이 부수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되지만, 그 때 흑요석 등의 생활물자를 손에 넣기 위한 적극적인 교류ㆍ교역이 행해졌을 경우도 있었다. 그 중 일기도에 나타나는 승문시대 유적의 형성시기가 교류의 성쇠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류ㆍ교역의 중계지로서 일기도가 기능하였을 가능성을 지적할 수 가 있다.  미생시대(弥生時代)가 되면 중국대륙ㆍ한반도로부터 문물의 입수를 조직적으로 행해지게 되는데, 『魏志倭人伝』에 「一支国」으로 등장하는 일기도에는 승문시대에 비하여 유적의 수ㆍ규모가 함께 증대하게 된다. 그 중심이 되는 집락이 다중의 환호(環濠)에 둘러싸여진 하루노쯔지(原の辻)유적이다. 하루노쯔지유적에서는 다수의 무문토기ㆍ삼한토기ㆍ삼국토기ㆍ낙랑토기를 비롯하여 대륙ㆍ반도에서 전해졌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각종금속제품이나 잠자리 옥으로 대표되는 장신구 등이 출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신의 건축ㆍ토목기술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일기도 내에 있어서 미생시대유적의 발굴조사 성과에서 추찰할 때 「一支国」가 지리적 이점을 살려서 적극적으로 문물의 이동에 관한 교류ㆍ교역의 거점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고분시대ㆍ고대의 일기도에 있어 한일 문화교류의 흔적은, 고분의 부장품을 중심으로 확인되고 있다. 고분시대의 일기도에는 상당히 많은 고분이 존재학 있지만 대부분 6세기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거대한 석재로 석실이 구축되어진 소위 「거석분」이 축조되는 점이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 고분에 부장ㆍ공헌되어진 물품의 내용에서 볼 때, 당시의 일기도가 중앙정권과의 사이에 깊이 개입되면서, 해상교통의요충지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당시 유적의 내용은 고분 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분시대에서 고대에 걸쳐 일기도는 교류ㆍ교역의 중계지 뿐만 아니라 병참기지로서, 결국 정치ㆍ경제ㆍ군사적인 의미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