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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57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87 - 12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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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탐라국에 대한 호칭은 ‘州胡’에서부터 ‘耽羅’・‘乇羅(托羅)’・‘儋羅’・‘涉羅’, 그리고 ‘躭牟羅’까지 다양한 표기로 사서에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이들 모두를 동일 대상인 탐라국에 대한 이표기로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耽羅와 󰡔魏書󰡕 고구려전에 나오는 ‘涉羅’의 실체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三國志󰡕 東夷傳의 韓傳에 나오는 州胡는 ‘오랑캐 마을’ 내지 ‘섬 오랑캐’로 해석된다. 문면으로 보았을 때 중국 측에 의한 타칭이다. 󰡔後漢書󰡕 東夷列傳에는 州胡國으로 표기되어 있어 탐라국 이전 제주의 고대국가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고 있다. 주호국이 제주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한 연구자는 없다. 다만 주호가 교역한 韓中의 실체는 연구자 간 견해 차이가 있다. 韓의 실체 규명은 주호가 제주로 비정될 수 있는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제주시 산지항에서 출토된 貨泉 등 王莽錢은 주호국이 1세기 대에 중국과 교류했음을 시사한다. 중국 화폐의 한반도 유입은 본토와의 직접적인 교역보다는 漢郡縣(樂浪郡)을 매개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가 漢郡縣과 弁・辰韓󰠏倭로 이어지는 교역경로 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산지항과 용담동・삼양동 등에서 화폐와 철제 무기류・옥환 등 중국이나 진・변한 계통의 위신품이 출토되는 까닭은 주호국이 이들의 교역체계에 능동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이다. 주호국의 교역범위는 전남지역의 마한을 중심으로 진・변한 지역을 망라하였다. 제주도산 토기가 나주시 수문 패총, 해남 군곡리 유적, 사천 늑도에서 출토된 것은 그 실증적인 고고자료이다. 제주의 고대국가가 耽羅國으로서 한반도 국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三國史記󰡕 백제본기가 최초의 기록이다. 이에 따르면, 5세기 후반인 문주왕~동성왕대에 탐라국은 백제에 공납을 바치는 종속관계에 있었다. 이와 달리 󰡔日本書紀󰡕에는 탐라와 백제의 통교가 508년에 처음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기왕에는 백제본기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면에는 백제가 4세기 후반인 근초고왕대에 전남지역까지 진출해 영역지배 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다만 백제본기의 탐라를 제주도로 보는 데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일본서기󰡕의 해당 기록이 백제계 계통이어서 사료 가치가 높다는 점, 동성왕이 정벌하려 했던 耽羅가 제주도라면 무진주[광주]에 도착한 백제 군사에 대해 탐라가 스스로 와서 죄를 빌었다는 내용이 어색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그 결과 백제본기의 탐라를 전남 강진과 해남지역에 있었던 소국으로 비정하였다. 백제본기 탐라의 실체는 향후 검토할 여지가 남아 있다. 󰡔魏書󰡕 열전 고구려전에 따르면, 504년에 고구려 문자명왕(491~519)이 북위 선무제에게 사신을 보내 그동안 조공했던 황금과 珂를 더 이상 바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황금은 夫餘에서 나고, 珂는 涉羅에서 나는 것인데, 부여는 勿吉에게 쫓기는 바가 되었고, 섭라가 백제에게 병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涉羅’의 실체이다. 한진서가 󰡔海東繹史󰡕에서 ‘섭라’를 제주로 비정한 후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계승하였다. 특히 珂를 말 재갈 장식에 사용하는 소라와 전복으로 보거나, 마노로 보되 그 생산지를 제주도로 이해하였다. 이와 달리 珂를 (백)마노로 보거나, 涉羅[신라]가 백제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珂를 바칠 수 없다는 문구도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고구려와 탐라의 관계를 입증해 줄 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점, 󰡔晉書󰡕 부견전에 사용된 신라 국호 ‘薛羅’가 ‘涉羅’와 음운상 같다는 신경준의 주장에 근거해 涉羅=新羅일 가능성이 마련된 점, 珂의 실체가 말 재갈 장식보다는 옥의 범주에 포함되는 마노가 더 유력하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涉羅’는 제주도보다는 신라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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