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논총 인문논총 제72권 제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43 - 374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성악연구회는 1934년에 발족하여, 1940년대까지 활동한 판소리창자의 모임이었다. 조선성악연구회는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등 이른바 4명창을 중심으로 193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조선음률협회’를 계승한 단체이다. 창립 시점에서는 ‘조선성악원’, ‘조선음악연구회’, ‘조선성악회’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성악연구회의 역사적 연원은1925년경부터 시작된다. ‘조선악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이동백, 김창룡등은 1925년 2월 10일과 11일에 걸쳐 「춘향가」와 「심청가」 판소리 공연을 시행한 적이 있었다. 이 조선악연구회는 결속력이 높은 단체라고는 할 수 없었는데, 이후 ‘조선음률협회’로 재정비되었고, 결국 조선성악연구회의 모태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선성악연구회는 창극 운동을 주도하였고, 그 결과 한국 창극 양식 정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성악연구회가 창극 정립 운동을 펼쳐나간 시점에 대한 세심한 고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그들이 창극 정립에 나선 이유와, 작품 취택 방법, 그리고 이러한 주력활동 전환의 의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못한 형편이었다. 본고에서 가장 주목해서 다루고자 하는 논점은 조선성악연구회가 전래의판소리 가창을 창극 양식으로 전환한 이유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대답이 존재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 연구에서는 1934년 창립부터 1935년 「춘향전」 공연에 이르는 그들의 상황과 선택을 중심으로시대적 정황과 예술적 전개 과정을 논구하고자 했다. 조선성악연구회가 이러한 창극화의 도정이라는 모험을 선택한 이유는, 레퍼토리의 확대와 양식의 다변화 그리고 창극 보급에의 의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전의 창극을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구악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 수 없다고 단정했으며, 보다 파격적인 공연 활동이 필요하다고 자체 진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실험과 도전의 1년 남짓 기간은, 구악의 레퍼토리로 간주되며, 그토록 반복 재공연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춘향전」의 가치에 대한 재확인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1936 년 9월 조선성악연구회는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했던 「춘향전」을 다시무대에 올리면서, 창극 정립을 위한 1935∼1936년의 도정을 일차적으로 마무리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2)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