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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5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7 - 7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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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 정보는 단종조의 충신으로 정조로부터 “살아 있는 사육신”이라는 평까지 받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사적이 일실되어 별반 주목되지 못하였다. 그의 사적을 변증하기 위하여 ≪설곡선생실기≫,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등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정보의 출생지와 시기, 참화사건, 단성 유배와 졸년 시기, 묘소, 사후 신원과 배향 등을 추정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보는 생몰연대조차 기록이 없으나 여러 문헌을 살핀 결과 정보의 졸년은 1460년(세조5, 경진) 쯤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보의 졸년을 근거로 출생 연도를 환산하면 포은의 순절 이전 개성에서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건국 이후 정보가 거주하였던 곳은 중부 견평방이었다. 정보는 포은의 유학(儒學)을 가통으로 전해온 가학을 전수하였으며, 성품이 올곧고, 구속받기를 싫어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절친하였던 인물이 성삼문・박팽년이라는 사실에서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그를 평하는 말로 ‘방랑불기(放浪不羈)’, ‘강의(剛毅)’, ‘당직(戇直)’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정보는 세종 때 사마시에 급제하여 문종 즉위년인 1450년에 사헌부 감찰로 재임하였으며, 이후 6-7개월간 외직인 예안현감에 재임하다가 퇴직하였다. 정보는 포은의 손자이기에 세종 때부터 각별한 시혜를 받았다. 왕실과 통혼할 정도로 영일정씨 가문에서 가장 전성기를 이룬 시기에 활동하였다. 그러나 사육신의 옥사를 계기로 정보의 일가는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정보는 성삼문・박팽년을 정인군자로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세조의 친국을 받았다. 이 당시 정보의 나이는 70을 넘은 때이다. 환형(轘刑)에 처해졌다가 포은의 손자라는 사실 때문에 죽음을 면하여 영일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단성 문태촌으로 이배되었다. 정보의 참화는 그의 가산을 적몰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일가친척들이 모두 역률에 연좌되어 처벌되었다. 정보의 묘소는 1460년(세조5) 무렵 졸서하여 단성의 문태산 기슭에 가매장 하였다가 이후 포은선생의 묘소 아래 반장(返葬)하였을 가능성이 짙다. 정보는 단종이 복위되고, 사육신이 포숭된 이후 1703년(숙종29)에 신원되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1791년(정조15)에 충렬서원과 옥산서원에 배향되었다. 1736년(영조12) 영월 유생이 상소하여 팔현사 현판을 청할 때 정보 또한 팔현의 한 사람으로 배향되었다. 근대시기에 이르러 이건하, 남정철 등의 노력으로 1906년(광무10)에는 정2품 자헌대부 내부대신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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