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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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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7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11 - 24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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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몽주와 유몽인의 중국인식 비교를 통해 중국인식의 차이를 밝히려는 논문이다. 정몽주는 6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중국 전문가이다. 정몽주의 시대는 국내적으로는 고려와 조선이 교체되던 시기이며, 중국은 원명교체기였으므로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 정몽주는 저물어 가는 고려의 사신으로 새로 일어서는 명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유몽인이 살았던 시기 역시 중국은 명청교체기였으며,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전쟁을 겪은 시기였다. 그러나 유몽인은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으며, 개성이 강한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유몽인의 중국에 대한 경험은 사행 뿐만 아니라 조선에 입경한 중국인과의 교류도 이루어졌으며, 문집뿐만 아니라 야담이라는 문헌설화를 통해서도 중국 및 중국인에 대한 체험을 기술한 점 등이 정몽주와는 다른 점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을 체험할 때 인물과 풍속의 차이에 주목하기 마련인데,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중국의 경우 한자문명권이면서 문명중심국이었기에 문장요소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는 중국의 ‘풍속’과 ‘문물’, ‘인물’은 물론 ‘문장’ 등에 대한 정몽주와 유몽인의 인식을 비교하였다. 정몽주는 외교관의 입장에서 중국의 인물에 대해서는 ‘비판’을, 중국 수도의 번화함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중국과 같은 문자를 쓰는 점에 대해서는 ‘동질감’을, 중국의 이국적 풍물에 대해서는 ‘관조(觀照)’의 입장을 취했다면, 유몽인은 문화 중심국으로 중국을 인식하고 󰡔어우집󰡕에서는 특히 문물의 발달에 대해 부러움을 보였으며, 다른 요소에 있어서는 관조의 태도를 보였다. 󰡔어우야담󰡕에서는 중국의 옛 제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현재 중국의 풍물은 비판하되 중국의 역사적 인물과 문장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추숭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정몽주는 중국 성리학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인물이며, 유몽인은 방외인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로 평가되지만 중국인식 양상을 볼 때 정몽주는 보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국으로서의 중국을 인식했다면, 유몽인은 문화와 문명의 중심이며, 조선을 도와준 은혜의 나라로 중국을 인식할 정도로 중국에 경도된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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